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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허들’이 놓인 긴 비핵화 여정
대구광역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03월 14일(목) 20:07

↑↑ 김성진 언론인
ⓒ 대구광역일보
“우리 외무상 동지가 밝힌 그대로입니다” “영변은 내놓는다고 했습니다” “명백히 한 겁니다”(북한 최선희 외무상 부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공식방문을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지난 2일, 김 위원장의 숙소인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는 10여명의 한국 기자들이 북측 관계자들과 만나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오전 8시께 ‘오늘 베트남 떠날 사람들이 나오겠나’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로비에 나타났다. 김 위원장이 호텔을 떠나기 꼭 1시간30분 전이었다. 최 부상은 1층 로비에서 2층 계단으로 올라가며 기자들의 질문에 몇 가지만 답하고 돌아갔다.
당시에는 급하게 녹음을 풀고 기사를 쓰느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왜 최 부상이 굳이 내려왔을까’를 다시 떠올려봤다. 최 부상은 호텔 2층 회의장에 무슨 볼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올라가서 문을 열었지만, 회의장은 비어 있었고 심지어 문도 잘 열리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2층에 갈 사람이 굳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대기하고 있는 1층으로 내려와서 어렵사리 다시 계단으로 2층까지 올라간 점도 의아한 대목이었다.
최 부상의 직급 정도면 기자들이 로비에 있다는 사실은 밤새 기자들을 감시한 북측 경호원을 통해 들었을 것이 당연하다. 거기다 북측 경호원들도 최 부상과의 인터뷰를 1층에서 막지 않고 2층에 올라와서야 뒤늦게 막아 세웠다.
돌아보면 28일 회담 결렬 이후 리용호 외무상의 새벽 긴급 기자회견과 마찬가지로 북측 입장이 다급했으리라는 점을 짐작케 한다.
그날 최 부상은 기자들과 만나 “우리 외무상 동지가 밝힌 그대로입니다”, “영변은 내놓는다고 했습니다”라며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아직까지 회담 결렬 이유에 대한 ‘정설’은 없는 듯하다. 혹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회담 전날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에게 퇴짜를 맞아서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여기에 양 측의 충돌이라고 보기에는 회담 결렬 뒤 인사하는 두 정상의 사진에서 김 위원장 표정이 ‘너무 밝다’는 사실까지 얹어져 원인은 더 불투명해진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영변-제제완화’로 예상됐던 비핵화 입구 찾기 작업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고, 그만큼 북미가 앞으로 넘을 ‘허들’은 더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후 진행 상황들도 협상 전망을 어둡게 하는 측면들이 있다. 특히 지난 5일부터 확인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의 재건 움직임은 북미 관계의 장벽을 더 높이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사게 한다.
북한은 그동안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 대해 우주 개발과 평화 목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무력 시설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해왔지만, 국제사회에서는 탑제체만 바꾸면 미사일이 될 수 있는 ‘로켓’을 위협으로 보고 동창리 발사장을 오랫동안 관찰해왔다.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움직임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나는 매우 매우 실망할 것”이라면서도, 그런 보도가 매우 이른 것이라고 선을 그으며 섣부른 판단을 일단 자제시켰다.
또 미 국무부 당국자도 “서해 발사장의 움직임이 왜 일어나는지를 이유를 알지 못하며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다”면서 “이 문제에 대한 북한의 의도는 그들만이 아는 것”이라고 했다. 미 국무부는 사찰단의 현장 진입을 추진한다는 복안을 구상 중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동창리 움직임에 대해 신중론을 펼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음에도, 미국 조야에서는 북한이 4월 최고인민회의를 앞두고 로켓을 발사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우려를 사는 또 한 가지 부분은 이 상황을 보는 우리 정부의 모습이 아닐까도 싶다. 서훈 국정원장은 지난 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소속 의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과 평양 산음동 미사일 연구단지 등에 대한 동향을 보고했다. 요약하자면 동창리는 ‘복원’ 움직임이 있고 산음동에는 차량이 증가했다는 내용이다.
비공개 보고 자리이니만큼 소속 의원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불가피할 수도 있지만, 가뜩이나 회담 결렬 뒤 복잡해진 북미 관계를 두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요 기지에 관한 발언을 해 예단을 키운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통상 국정원장의 발언은 국회 보고라고 하더라도 일종의 SC(전략 커뮤니케이션) 차원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미국 정부에서도 신중론을 펼치는 동창리 동향 등에 대해, 국정원 측이 ‘확대 재상산’ 역할을 한 저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정부 당국자들도 있다. 극도로 예민한 시점이고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정원 보고가 있은 뒤 ‘무력시위’, ‘무력도발’이라는 주장까지 우후죽순 대두되고 있다.
다행이라면 이 같은 예단에도 불구하고 북미 대화의 판은 살아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와 미국은 김 위원장 및 북한과의 관계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면서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 3대 관영매체 역시 대미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전날 “이번 하노이에서 진행된 제2차 조미수뇌 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좋은 결실이 맺어지기를 바라마지 않았던 내외는 회담이 뜻밖에도 합의문이 없이 끝난 데 대해 미국에 그 책임이 있다고 한결같이 주장하며 아쉬움과 탄식을 금치 못해하고 있다”면서도 대미 비난을 자중하고, 오히려 ‘회담을 방해했다’며 일본에 초점을 맞춰서 맹비난을 쏟아냈다.
대화 재개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아직은 예측이 어려워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이 “수 주 안에 평양에 대표단을 보내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던 만큼, 빠른 시일 내에 대화가 재개될 수도 있다. 다만 북미가 더 높아진 허들을 넘기 위해 지금보다 험난한 길을 밟을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해보인다.
여기에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볼까 한다. 그는 ‘석 자의 얼음은 하루의 추위로 생긴 것이 아니다’라는 중국 속담을 빌려와 “한반도 문제는 하루 이틀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70여년 간 반목했던 북한과 미국이 사상 ‘첫’ 정상회담을 가진 게 불과 8개월 전이었다. 하노이 정상회담은 긴 비핵화 여정에서 겨우 두 번째 만남이었다. 북미가 긴 호흡을 갖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 해결에 중지를 모으길 기대해본다.
대구광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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