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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상주본 회수 ‘딜레마’…
상주고 학생들 ‘국가 반환 서명운동’ 시작
SNS 통해 전국 확산…청와대국민청원 등장
문화재청, 훼손 우려 강제집행 고심 깊어
이태호 기자 / 입력 : 2019년 08월 18일(일) 22:14

↑↑ 배익기(오른쪽)씨가 황천모 상주시장과 상주본 반환 문제를 논의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대구광역일보
↑↑ 상주고 김동윤 학생이 훈민정음 상주본 국가 반환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 대구광역일보
↑↑ 불에 그슬린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 대구광역일보
훈민정음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56)씨와 문화재청 간 소유권 공방이 11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반환 서명운동이 경북 상주지역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상주시와 상주고 등에 따르면 최근 상주고 김동윤(2년) 학생을 중심으로 ‘상주본’ 국가 반환 서명운동이 시작돼 눈길을 끌고 있다.
서명운동은 전교생 416명을 대상으로 진행돼 현재 4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앞으로 상주지역 다른 학교는 물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전국 고등학교로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훈민정음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56)씨와 문화재청의 소유권 공방이 11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상주본 공개와 관련해 서명운동이 추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주고 학생들은 “상주본 공개 문제가 어른들만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학생들도 국보급 문화재인 상주본이 국가에 반환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서명운동에 이어 청와대가 직접 나서 상주본의 관리주체가 국가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나도 직접 보고 싶어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대한민국의 힘과 저력은 한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한글 창제의 원리가 정리된 국보급 문화재인 상주본을 개인이 소장한 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근 상주본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는 대법원 판결도 난 만큼 문화재청은 보다 적극적으로 상주본 반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문화재청은 소장자에게서 상주본을 강제 회수할 법적 근거를 확보했지만, 훼손 우려 등을 이유로 상주본의 회수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상주본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리한 강제집행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반환 협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압수수색을 벌이게 되면 자칫 상주본이 훼손될 수 있다. 우선 반횐 협상을 하면서 협상이 안될 경우 강제집행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주본 소장자인 배씨가 국가 반환에 문제를 제기하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배익기씨 “대법원 판결, 무효 소송 준비”
배 씨가 최근 나온 대법원 판결에 대해 무효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상주본 소유권이 국가 즉 문화재청에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에 억울한 측면이 있어, 이달 중 변호사의 도움을 얻어 무효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대법원은 배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를 기각하고, ‘상주본 소유권이 배씨에게 있지 않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배씨는 상주본을 회수하는 문화재청의 강제집행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결국 패소했다. 
상주본 소유권이 문화재청에 있다는 사실을 대법원이 확인한 셈이다. 
배씨는 “문화재청 측과도 지난달 판결이 나온 이후 접촉을 가졌지만 진전이 없었다”고 했다.
실제 문화재청은 지난달 17일 배씨를 만나 상주본 반환 거부 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상주본 반환 문서도 전달했다.
문화재청 측의 문서에는 ‘훈민정음 상주본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는 사실이 재확인됐고, 문화재를 계속 은닉하고 훼손하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배씨는 “상주본 반환에 1000억원을 주장하는 것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해온 말이다. (나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한 것인데, 현실적으로 1000억원이 가능한 금액은 아닐 수도 있다고도 본다. 그렇다고 얼마를 달라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했다. 
상주본 사례금 1000억원은 그가 문화재청이 상주본 가치를 최소한 1조 이상 간다고 본 것을 기준으로 두고, 10분의 1 정도 가치로 정해 주장하는 액수다. 
    
▣상주본 행방은
상주본 현재 상태와 행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배씨는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상주본이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느냐에 대해선 어떤 식으로든 말할 입장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제가 알기로는 이것이 완전한 본으로는 총 33장이다. 그런데 책장 세보는 사람이 누가 있냐”면서 “훈민정음 간행본처럼 상주본도 어차피 완전한 것은 아니다”라고 현 상태가 좋지 않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독지가가 상주본을 챙겨 국가에 기증하는 것도 방법 아니겠는가. 이런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60대 독지가가 나타나 이야기 중이지만 공개하긴 어렵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상주본의 훼손과 분실 등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상주본은 2015년 3월 배씨의 집에서 불이 났을 때 일부 훼손됐다.
배씨는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상주본을 꺼내왔고 이후 자신만이 아는 곳에 상주본을 보관 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서적 수집가인 배씨는 2008년 한 방송을 통해 자신이 상주본을 갖고 있다고 처음 알렸다.  
하지만 골동품 판매업자 조모(2012년 사망)씨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기나긴 공방이 시작됐다. 
대법원은 2011년 5월 상주본의 소유권이 조씨에게 있다고 판결했지만 배씨는 상주본 인도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구속(2014년 대법원 무혐의 판결)되기도 했다. 
조씨는 사망하기 전 상주본을 서류상으로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상주본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배씨에게 상주본 인도를 계속 요구 중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학술적 가치 높아’
한글 창제의 배경과 원리 및 사용법을 기록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로 지정돼 있다.
간송미술관에 보관된 것이 유일본이었지만 2008년 상주의 고서적 수집가인 배씨가 다른 해례본을 공개하면서 해례본은 2개가 됐다.
배씨가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상주본이고, 이 상주본은 세상에 빛을 본 지 11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여정은 파란만장하다.
상주본은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과 같은 판본이면서 표제와 주석이 16세기에 새로 더해져 간송본보다 학술 가치가 더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상주본 국가 반환은 배씨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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