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용가 최승희(1911-1967)의 무용복과 악기가 실체를 드러냈다. 최승희가 손수 지어 입은 공연용 저고리·치마 각 1벌과 장구 1세트다. 최승희의 제자 겸 동서인 김백봉(90·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명무가 보관해온 것들이다. 차길진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이 뮤지컬 ‘온리 러브’ 제작을 계기로 이들 유품의 존재를 확인, 세상에 알리게 됐다. 노란 반회장 저고리와 보라색 통치마의 원단은 ‘본견’으로 통하는 중국산 비단이다. 자수가 화려한 저고리의 깃, 고름, 끝동에 스팽글을 단 것이 특징이다. 어깨끈이 있는 변형 한복 형태의 치맛단도 스팽글로 장식했다. 최승희는 1943년 8월 말-11월 초, 1944년 12월부터 1946년 5월 귀국할 때까지 중국에서 김 명무와 활약했다. 김 명무는 “1945년 전후 중국에서 활동할 때 만든 것으로 기억한다. 최승희 선생이 디자인했고 원단 염색과 바느질은 내가 했다. 최승희 선생의 작품이 너무 많아 어떤 작품에 사용한 의상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당시에는 모든 물자가 부족해 무대의상을 한 벌 만들면 여러 작품에 활용했다. 다른 공연 때 입었던 저고리와 치마를 아래 위로 바꿔 입어 의상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최승희 선생과 내가 여러 작품에서 필요에 따라 교대로 입다가 물려받은 것”이라고 전했다. 평소 김 명무는 “(최승희를) 형님이라고 불러본 적이 두 세 번뿐이다. 항상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며 경외해 왔다. 최승희의 장구는 몸통, 북편, 채편, 조이개가 붙어 있는 갈고리쇠가 분리된 상태다. 둥글채와 열채는 없다. 붉은 옷칠을 한 몸통은 탈색됐으나 양 끝에 돋을새김의 비천도(飛天圖) 문양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북편, 채편, 갈고리쇠, 조이개의 형태는 온전하지만 다시 연주하기에는 몹시 낡은 편이다. 최승희가 장구춤을 추면서 소품이나 반주용으로 쓴 장구는 여럿이다. 모습을 나타낸 실물은 이것이 처음이다. 차 이사장은 “지금까지 최승희 선생의 사진이나 신문 자료는 많이 있었지만 유품은 공개된 적이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으나 이제는 많은 분들과 함께 할 때가 돼 최승희 선생이 입었던 의상과 사용했던 장구를 공개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수집한 최승희 선생의 자료와 함께 전시관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강원 홍천 태생인 최승희는 일본, 미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각국에서 150여 차례 공연했다. 헤밍웨이, 피카소, 찰리 채플린, 장 콕토 등도 당대 톱스타 최승희에 매료됐다. 최승희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가 안막(안필승)과 결혼, 1947년 월북했다. 10년 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됐으나 이듬해인 1958년 안막은 숙청 당했다. 이후 최승희도 숙청됐다가 2003년 복권돼 애국열사릉으로 옮겨졌다. 조선총독부의 압력을 받고 만주, 남경 등지로 일본군 위문공연을 다닌 탓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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