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중견기업 마케팅팀 과장인 이태환(가명·35)씨는 술자리가 매번 고역이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데도 ‘1잔 정도는 괜찮다’며 직장 상사와 거래처 직원들이 술잔을 내밀 때마다 가슴이 철렁인다. 이 씨는 술을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안면 홍조증과 함께 속이 더부룩해지고 졸음이 밀려온다. 억지로 받아마신 술 한두 잔 때문에 회식 자리에서 졸기 일쑤다. 이런 생활이 7년째 이어져 예전보다 주량이 세진 것 같지만 술이 늘 불편하다. 부서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회식에는 빠짐없이 참석하지만 ‘마셔’를 외치는 동료들이 원망스럽다. 이태환 씨는 “술 한 잔에도 몸이 괴로운데 회식이 즐거울 리 없다”며 “담배는 권하지 않으면서 도대체 술은 왜 그런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 꾸준히 마시면 주량이 는다?흔히 술을 마시지 못해도 꾸준히 입에 대면 주량이 늘어난다는 속설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일시적으로 주량이 늘고 얼굴이 덜 붉어지는 것은 뇌 일부분이 알코올에 적응한 착시효과다.술 한두 잔에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하는 이유는 알코올 유독성 대사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가 몸에 축척돼 나타나는 증상이다. 체내에 흡수된 알코올은 간에서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해된다. 이후 다시 물과 탄산가스로 분해돼 몸 밖으로 나온다. 간이 분해할 수 있는 알코올량을 넘어서면 안면이 붉어지는 알코올 홍조증이 바로 나타난다. 구토 증상과 두통, 메스꺼움을 느끼는 것도 아세트알데히드 부작용이다.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아세트알데히드 분해 효소가 선천적으로 결핍됐거나 많이 부족하며 평생 체질이 바뀌지 않는다. 이런 증상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인종에게 주로 나타난다. 의학계는 이런 현상을 ‘아시아 플러시(Asian flush)’로 부른다.알코올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전용준 원장은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알코올 알레르기 체질’로 볼 수 있다”며 “억지로 마실수록 몸에 부담만 준다”고 지적했다. ▣ 억지로 마시면 고혈압 등 심혈관 위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지금도 괴로운 술자리를 이어가는 직장인들이 많다. 이런 생활을 이어가다 보면 몸이 서서히 망가질 수밖에 없다.대표적으로 알코올을 분해하는 간 조직이 망가지고 장기적으로 고혈압 등 심혈관질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심장이 갑자기 멈춰 사망 확률이 높은 심근경색, 뇌졸중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이지현 서울성모병원 피부과 교수는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은 100% 유전으로 보기 어려워도 평생 체질이 바뀌지 않는다”며, “술을 잘 마시는 사람보다 심혈관질환 위험이 증가한다”고 경고했다.전용준 원장은 “알코올 안면 홍조증이 있는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건 가혹한 행동”이라며 “두통과 메스꺼움을 느끼는 사람의 고충을 이해하는 역지사지 정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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