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조해진(41)의 신작 소설집 ‘빛의 호위’는 기명된 내용이 망각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노력이다. 절망과 고독을 감싸주는 기억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어둠속에 숨어 있던 진실 속 따뜻한 온기를 끄집어낸다. “사라졌으므로 부재하지만 기억하기에 현존”(‘사물과의 작별’ 중), “생존자는 희생자를 기억해야 한다”(‘빛의 호위’ 중)는 그 정언명령에 대한 의지다. 절실함으로 단어 하나에도 진심을 담아 눌러 쓴 이유다. “소외와 불안의 문제를 개인의 삶을 통해 포착”했다는 심사평과 함께 이효석문학상을 받은 ‘산책자의 행복’을 비롯해 9편이 실렸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한 작품을 묶었다. 조해진이 오랫동안 천착해왔을 뿐 아니라 ‘세월호 시대’를 살아가며 더욱 견결해진 주제인 “역사적 폭력이 개인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한기욱 해설 중)하는 지점을 섬세하고 차분하게 파고든다. 조해진은 그럼에도, 힘겨운 가운데도 ‘살아 있음’에 대한 감각을 놓지 않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를 살게 하기 위해 고투하면서 그 힘으로 살아간다. 세상을 떠난 언니가 동생을 살아가게 하며(‘잘 가, 언니’), 어린 시절 친구에게 선물한 카메라가 그를 세상 밖으로 이끌기도 하고(‘빛의 호위’), 신문에 실린 사진 한장이 먼 나라의 화가에게 작품을 완성하도록 부추기는 영감(‘시간의 거절’)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를 살리는 절실함은 ‘산책자의 행복’에서 가장 부각된다. 철학과 강사였으나 학과 통폐합으로 직장을 잃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는 홍미영(라오슈)에게 답장이 없는 편지를 계속 보내는 중국인 제자 메이린은 “살아 있는 동안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라는 라오슈의 말을 되새기며 살아간다. 신동엽문학상(2013), 젊은작가상(2014)에 이어 이효석문학상(2016)을 연달아 수상하며 믿음직한 작가로 발돋움한 조해진은 점차 사람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녀는 작가의 말에서 “어떤 이야기도 한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생애에는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표현되는 순간보다 훨씬 더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이야기 너머로 뻗어가는 지평에 수많은 문장과 생각과 감정이 흩어졌다가 모이며 또하나의 작은 길이 돼가는 상상은, 언제나 두려울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 이제야 나는, 진짜 타인에 대해 쓸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268쪽, 1만2000원,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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