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5·18 당시 마지막 일기 “병든 역사를 위해 먼저 갑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총탄에 숨진 류동운 열사가 고교시절 독재 정권을 비판하며 작성한 글이 발견됐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작하고 있는 박기복 감독은 류 열사의 유가족과 인터뷰를 하던 중 유작시 ‘가을을 날린’을 찾았다고 9일 밝혔다.류 열사가 고교 2학년 시절에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시는 첫 문구부터 서슬퍼런 군부독재를 비판했다. “노을을 찢어 어둠 속에 쫓아내고 땅거미 우는 이 밤에 가을을 그리도 곱게 태운 낙엽이 옛 얘기로 가득 찬 홍로(紅路) 위에 방황할 때면 힘없는 눈동자는 팔아버린 고향 길을 달려 알지 못한 슬픔을 안겨 줍니다”라고 표현했다. 또 “어디서 왔던 바람인가요. 가을을 훔쳐가며 방황하는 마음속에 깊은 파편을… 광음의 타락으로 거저 넘긴 더러운 여백 속에 아쉬움을 남긴 채 떨어질 듯 싸리문 꼭대기에 매달린 고추잠자리 밀치려는 듯 모퉁이 넘어 무(無) 소리로 사라져간 여로 후로 이제는 나도 갑니다”라며 그 시절을 비판했다. 이 시로 인해 류 열사는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붙잡힌 아버지 연 창(90) 씨와 함께 구속된다. 당시 집안을 수색하던 기관원들이 독재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글을 발견하고 류 열사도 함께 끌고갔다. 하지만 류 열사는 아버지의 강력한 항의로 3일만에 풀려날 수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군부독재를 부수기 위한 투쟁의 길에 본격 들어선다. 1979년 광주진흥고를 졸업한 류 열사는 한신대에 입학했으며 1980년 5월 대학 2학년 시절 광주의 소식을 접하고 광주로 내려와 전남대 학생들과 시위에 나섰다. 5월 16일께 계엄사에 연행돼 고초를 겪고 풀려나지만 친구의 형이 거리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현장을 목격한 뒤 다시 항쟁에 가담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병든 역사를 위해 먼전 갑니다. 역사를 위해 한 줌의 재로 변합니다. 이름 없는 강물에 띄워주시오”라는 글을 남기고 계엄군에 의해 5월 27일 복부 관통상을 입고 생을 마감했다. 박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류 열사가 진흥고 2년 선배라는 사실을 알고 관심을 갖게 됐다”며, “영화촬영이 3월 중 다시 시작되는 만큼 그의 이름이 영화에 새겨질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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