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으로 남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에 들어가며 한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침묵 속에 빠져들었지만 결국 이틀여 만에 내놓은 첫 공식 입장이 이 같은 사실상의 불복 의사다. 이번 메시지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의 파면 결정을 바라보는 박 전 대통령의 진짜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문제는 탄핵심판 결과에 대한 승복 메시지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시간을 13년 전으로 돌려보자. 박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4년 10월 27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섰다.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위헌 결정을 내리자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만을 드러냈을 때다. 박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곧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이는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부정”이라며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잘못을 확인했을 때는 고칠 줄 알아야 한다”고 노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그 해 4월 21일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심판을 앞두고 있던 노 전 대통령을 향해 “헌재 결정에 승복할 것인지 여부를 먼저 답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랬던 박 전 대통령이 지금에 와서는 과거 자신의 발언을 완전히 뒤집고 있는 것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로 지금은 희미해졌지만 ‘원칙’과 ‘신뢰’는 박 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었다. 법치주의를 상징하는 헌재 결정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이 더욱 실망스러운 이유다. 혹자는 헌재 결정 자체가 되돌릴 수 없는 것인데 굳이 승복을 말해야 할 이유가 있냐고 묻는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극단으로 양분된 국론을 하나로 모으고 사회갈등을 조속히 수습해야 할 책무가 있다. 4년 전 ‘국민대통합’과 ‘국민행복’을 국정운영 철학으로 제시해 놓고도 국론 분열과 국민 불행을 초래한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느낀다면 응당 그래야 한다.이미 탄핵반대 집회에서는 세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주말 탄핵 무효 촉구 집회에서 더 큰 불상사가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더라도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은 박 전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앞으로 국민 통합이 필요하다든가, 이번 최순실 논란에 대한 대국민 사과까지는 몰라도 그저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인다”는 이 한 마디만 있었으면 박 전 대통령에게 지금과 같은 비난의 화살은 적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