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으면서 국내에 번역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됐다. 채식주의자를 영문으로 번역해 이 상을 한강과 함께 받은 데보라 스미스는 국내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꾸준히 오역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번역가는 이처럼 번역을 잘 끝마치더라도 ‘반역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원문에서 말하는 것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오래된 경구다.우리 시대의 가장 저명한 번역가 중 한명인 그레고리 라바사(1922~2016)조차도 이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번역 인생과 번역에 대한 생각을 담은 ‘번역을 위한 변명’을 통해 변론을 펼친다. 라바사는 번역가로서 세계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가 번역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그의 영역본 덕분에 세계 문학에서 널리 읽히는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마르케스는 ‘백 년 동안의 고독’ 영역본을 스페인어 원본보다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라바사를 일컬어 “영어권의 가장 뛰어난 라틴아메리카 작가”라고 평하기도 했다. 라바사는 번역자에 대해 이상적인 작가(ideal writer)라고 표현한다. “그가 하는 일은 (옮겨) 쓰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이기도 해 내용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면밀하게 읽어야 한다고 짚는다.  “스페인어를 읽으면서 영어로 읽어내는 방식으로 책을 읽어야 하고, 그 결과 그의 독서는 동시에 쓰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번역자의 읽기는 1만 권의 다양한 책을 만들어내는 읽기가 된다고 강조한다. 결국 라바사는 원문에 대한 번역의 배신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언어를 배신하기도 하고, 저자나 번역가 자신에게 반역을 저지르기도 한다”고 살핀다. 단어는 원래 배신을 잘하는 것으로 똑같은 사물을 지칭하는 단어일지라도 영어의 ‘stone’(돌)과 프랑스어의 ‘pierre’(돌)는 결코 같은 의미의 폭을 지니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언어에 대한 배신은 문화적 차이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소설 ‘변신’에서 카프카는 흉측한 벌레를 등장시키며 갑각류의 곤충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그 소설을 읽는 뉴요커라면 필경 뉴욕에 번창하는 바퀴벌레를 연상한다는 것이다. 라바사는 “이런 문제는 저자에 대한 배신으로 이어지는데 언어, 문화와 같은 요소는 저자를 이루는 것이므로 그것들은 저자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고 본다. 이를 번역자의 것으로 만들 때 번역가는 반역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라바사는 가장 슬픈 반역 행위로 번역가가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것을 꼽는다. 작가이자 독자로서 번역가는 직감과 신중한 자신감을 가지고 번역해야 하는데, 때때로 두려움 때문에 진부한 규범을 더 중시하면서 직감을 희생할 때 반역을 저지르게 된다는 얘기다.라바사는 이렇게 태생적으로 배반의 성격을 지닌 번역 행위를 고찰함으로써 번역이 불가능한 작업임을 역설한다. 292쪽, 1만6000원, 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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