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금속활자(증도가자)는 진품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13일 문화재청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증도가자’ 보물 지정여부 검토결과를 공개하며 이 같이 밝혔다. 증도가자 문화재 지정을 부결한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는 “신청 활자의 표면층, 부식생성물과 내부 금속의 주성분, 미량 성분을 분석한 결과, 청동유물에서 나타나는 데이터와 다르지 않았으며 활자의 내부구조 와 표면조사에서도 특이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3개 기관이 신청 활자에서 채취한 먹의 방사성탄소연대를 측정한 것은 적정하게 진행됐다고 인정했다. 상한 11세기 초, 하한 13세기 초, 중간값 12세기 초다. 다만 “신청 활자의 출토 당시 고고학적 증거에 대한 의문이 있고, 이후 보존환경의 신뢰성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먹의 연대측정 결과로 활자의 연대를 추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다.신청 활자와 신청 활자로 찍었다는 주자본을 번각한 증도가 서책 글자와의 유사도 분석에서 글자의 모양, 각도, 획의 굵기 등이 대조집단인 임진자 활자 복각본에 비해 평균 유사도는 낮고, 유사도 편차의 범위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관된 경향성도 보이지 않았다. 주조 재현 실험 결과, 밀랍주조방법으로 만들어졌다고 봤다. 활자 제작과정에서 제거해야 하는 목형을 빼내기 어려운 활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근거다. 글자면과 바탕면을 분할한 목형을 만들어 활자를 주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도 확인했다.조판 실험에서는 신청 활자 중 홈형 활자의 경우 세로 평균치보다 크기가 작은 활자가 1자 이상 포함된 경우에는 조판이 가능했다. 하지만 평균 크기 또는 최대 크기의 활자는 조판을 할 수 없었다. 홈날개형 활자의 경우 가장 작은 크기의 활자로는 조판이 가능했으나 평균 크기 또는 최대 크기의 활자로는 불가능했다. 결국 문화재위원회는 증도가자의 보물 가치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물 지정은 불가하다고 의결했다. 한편 증도가자의 존재를 처음 알린 서지학자 남권희 교수(61·경북대 문헌정보학)는 “증도가자는 과학적 검증을 통해 충분하게 진본이라는 증거를 보여줬다”며 반발했다. 2010년 KBS ‘역사스페셜’이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일본의 기초과학연구소에 분석을 의뢰, 廣(광)자와 권(眷)자가 10~11세기 주조된 것으로 판명했다. 佛(불)자와 悲(비)자를 분석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주조시기를 9세기로 봤다.2012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탄소연대를 측정했더니 令(령), 我(아), 等(등), 切(절), 福(복)자가 10~13세기에 주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듬해 대구MBC 창사 50주년 특별기획팀이 서울대학교 기초과학공동기기원에 의뢰한 탄소연대측정에서는 衆(중), 廣자가 8~9세기에 주조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경북대학교 산업협력단에 의뢰한 탄소연대측정은 爲(위)자를 포함한 활자 20개를 대상으로 했다. 7~8세기로 분석된 셋을 제외하고는 11~12세기에 주조된 것으로 확인됐다.남 교수는 “탄소연대측정에서 연대분포가 다소 넓게 나타난 것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고려시대에 주조된 것이 분명하다는 점은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따라서 증도가자라는 명칭으로 지정신청한 활자그룹을 한정하는 것이 문제라면 고려금속활자로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서체분석에서도 유사도는 대부분 90% 이상이었다. 금속활자 증도가자와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서체를 비교한 결과다.  제작기법과 성분분석도 증도가자가 최고(最古)라고 가리킨다. 내부구조 조사에서는 접합된 흔적으로 균열이 관찰되지 않는 하나의 몸체로 주조된 것이 관찰됐다. 인위적 조작 흔적은 없다. 표면조사에서는 특이 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 부식물 성분에서 편차가 발생했지만 부식 과정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결정구조 분석에서도 이상물질이 발견되지 않았고 납성분의 산지가 옥천과 영남이므로 위조물로 의심할 구석은 없었다. 남 교수는 “증도가자 지정을 부정하려는 일부 사람들이 주조기법과 조판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현재 알려진 고려시대 주조기법은 없다. 활자 자체의 진위를 판정하는 결정적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짚었다. “조판방식도 관련 주장에도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을 부정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고려 초기의 활자주조 과정에서는 활자 크기를 규격화할 수 없으며 번각본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형 가능성을 고려할 때 조판방식으로 활자의 진위를 판별할 수 없다.”남 교수는 “7년 이상 문화재청이 지정조사를 하면서 연대측정, 성분분석, 서체분석 등을 거쳐 지정가치를 충분하게 확보했다. 더 이상 고미술계의 갈등과 음모에 휘둘리지 말고 인류 문화사 교과서를 바꿀 만한 우리 조상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바르게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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