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2조9000억원의 신규자금 투입을 골자로 하는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안을 내놨다. 지난 2015년 10월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를 위해 4조2000억원 규모의 지원을 결정한 뒤 ‘추가 지원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1년5개월여 만에 입장을 틀었다. ‘왜 하필 지금이냐’는 의문이 잇따랐다. 새 정부 출범까지 한 달여 남짓 남은 상황. 큰 부담이 따르는 국세 투입 결정을 굳이 대행 체제인 현 정부가 내렸어야 하느냐는 지적이었다. 정부 설명은 이랬다. “다음 정부가 결정한다고 해서 더 나은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미루면 부실 부담이 더 커진다” 정치적 상황이나 일정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껏 결정을 내린 게 사실이라면 긍정적으로 평가해야한다. 하지만 최근 정부 일각의 움직임은 이런 평가를 무색하게 만든다. 공교롭게도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자 기존 정부 정책과는 결이 다른 정책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말 발표한 ‘2018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에서 양극화 완화를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다. 양극화 완화가 지침에 명시된 것은 노무현 정권 이후 11년 만이다.공정거래위원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공정위는 최근 총수 일가 기업집단의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을 상장사의 경우 지분율 요건을 기존 30%에서 20%로 낮추는 방안을 언급했다. 보건복지부는 1년 넘게 끌어온 서울시와 청년수당 사업 문제를 마무리했다. 한때 직권취소 결정까지 내리며 서울시와 대립각을 세웠으나, 이달 초 서울시의 정책에 동의한다고 밝혔다.야권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정부가 일찌감치 코드 맞추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좌클릭’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잠잠하던 양극화 문제가 11년 만에 돌연 심각해졌다거나 대기업 횡포가 지난 1년 사이 갑자기 극심해진 거라면 정부가 적기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청년실업 지원 문제도 마찬가지. 하지만 양극화와 대기업 횡포, 청년 빈곤은 급부상한 사회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정부가 차기 정권을 의식해 이런 정책들을 내놓았다고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정부가 진정 양극화 해소나 재벌 개혁에 의지를 갖고 있었다면, 대선 날짜만 마냥 바라봐야 하는 이런 시기가 오기 전에 이 같은 주장을 폈어야 했다. 오이밭에선 신을 고쳐 신지 말라고 했다. 물론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박근혜 정권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정부가 대선 바람을 타고 소홀했던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고. 후자가 맞는 해석이길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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