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양회 문경공장이 어느새 반세기를 넘어 환갑을 맞았다.문경시 신기로 250에 위치한 이곳은 1957년 건립 기념비석이 지난 세월을 잊은 듯이 마당 한 켠에 서있었다.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의 시찰기념 거울이 벽에 무심히 걸려있다. 이 곳이 쌍용양회 문경공장이다. ▣추억이 묻은 자리이 공장은 처음에는 대한양회 제비표 시멘트였다. 한때는 관광객이나 수학여행단이 끊이지 않던 이름난 곳이다. 196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에 사진과 이름이 실렸다. 그러나 화려했던 경력도 세월앞에 고개 떨구며  퇴색해가고 있다.새마을사업 등 건설경기 활황 등으로 공장이 번창했을 땐 시멘트 한 차를 싣기 위해 공장 밖에서 트럭들이 며칠씩 줄을 서 있기도 했다. 공장 직원들만 해도 500여명에 협력업체까지 합하면 1000여명 종업원이 근무하던 시절도 있었다.실제 신기초등학교의 학생수가 1969년에는 1800명을 넘은 걸 보면 그 당시가 가장 번창했던 시기다. 지금은 겨우 70여명의 아이들이 다니는 작은 학교가 됐다.우리나라의 시멘트산업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던 문경공장은 지난 70-90년대 번성기 때는 소위 말하는 습식 생산방식인 대형 고로를 회전시켜 시멘트를 밤낮없이 구워 냈다.지금은 특수 고강도 시멘트만을 건식 방식으로 생산해 오고 있다. 현재직원 30여명과 협력업체 등 80여명이 특수 시멘트 생산에 나서고 있다. ▣문경공장 60년 역사 재조명도는 올해로 준공 60년을 맞이하는 쌍용양회 문경공장의 60년 역사를 재조명하고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근대화 산업유산 지속가능 이용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했다.쌍용양회 문경공장은 한국전쟁 후 정부가 운크라(UNKRA)자금으로 덴마크 회사(F. L. Smith & Co. A/S)와 연간 20만톤 규모로 건설계약을 체결해 준공했다.1950년 1월-1958년 7월까지 산업·교통·통신 복구 및 주택·의료·교육시설 개선사업 실시 (예)인천판유리공장, 충주비료공장, 국립의료원 등이다.당시 쌍용양회 문경공장은 삼척 동양시멘트공장과 함께 국내 수요의 절반을 담당했다.1957년 9월 공장 준공식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등 우리나라 근대 산업화 기지의 상징이다. 인근지역 초등학생들도 소풍가서 도시락을 먹었다며 지금은 어른이 돼 추억을 회상하는 이들이 많다.현재는 산업고도화와 시설노후화 등에 따라 국내 유일하게 남아있는 습식고로(킬른방식) 시멘트 제조시설 4기는 1996년 이후 가동이 중단돼 과거 화려한 영화를 뒤로 한 채 현재는 특수시멘트만 생산 중이다.아직까지 습식고로 4기를 비롯해 공장건축물 및 설비가 80%이상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대한민국 산업근대화의 역사·문화 유산적 가치가 높은 장소이다. ▣세계문화유산 등록도는 2013년부터 전국 처음으로 ‘경북도 산업유산 지정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지난해까지 노당기와, 오운여상, 풍국정미소, 상주잠령탑, 묵상정미소, 성광성냥, 영양탁주합동 등 총 7개소를 산업유산으로 지정했다. 올해에도 쌍용양회 문경공장을 비롯해 도내 소중한 산업 건축물을 계속 발굴한다.산업유산은 옛 모습을 간직한 산업건축물 중 심의를 거쳐 선정된 보존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김남일 경북도 일자리민생본부장은 “이번 연구용역을 통해 쌍용양회 문경공장의 효율적인 관리보존 방안을 꾀하고, 우리나라의 근대산업 유산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나아가, 일본 근대 산업유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진 사례와 같이 다른 지역에 있는 근대 산업유산과 연계해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도록 문경시와 함께 강구해 나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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