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공식화하면서 원전 관련업체들이 큰 충격을 받고 있다. 그동안 ‘설마설마 하던 일’이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국내 원자력발전 설비시장을 이끌고 있는 두산중공업을 비롯해 700여개 협력사는 말 그대로 ‘패닉’이다. 19일 고리 1호기가 가동을 공식 중단하면서 원전 해체 시장이 열렸지만 아직은 먼 얘기다.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원전 대장주’인 두산중공업이다. 이날 이 회사 주가는 전날보다 11.0% 하락한 2만1450원에 장을 마쳤다. 두산중공업의 지난해 매출 13조8927억원 가운데 원전분야 매출은 15% 정도다. 하지만 다른 사업부문보다 수익성이 높다는 점에서 투자자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는 분석이다. 두산중공업은 국내 유일의 원전 주기기(원자로, 증기발생기, 발전터빈 등) 공급 업체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32기의 원자로와 108기의 증기발생기를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공급했다. 건설하고 있는 신고리 5, 6호기의 불확실성도 높아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 투입비용, 보상비용, 전력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해 이른 시일 안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 건설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1조원가량의 일감을 허공으로 날린다. 협력사에도 연쇄적인 매출 타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발표로 그동안 수주를 노려오던 울진의 신한울 원전 3, 4호기, 영덕의 천지 1, 2호기도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국내 원전사업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원전사업이 약 36조2000억원의 생산 유발과 연인원 9만20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설계, 주기기 및 보조기기, 시공사 등 700여개 원자력 공급업체와 관련 기업에 3만여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전에 대한 정치적 찬반은 있을 수야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국가기간사업 명맥을 끊어놓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특히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중소기업의 위기감이 크다. 익명을 요구한 A사 대표는 “수출 등을 통해 해외실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기업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라며 “당장 존폐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원자력기자재진흥협회 관계자도 “정부가 어떤 퇴로도 없이 원전산업을 죽여버리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탈원전을 발표하면서 업계에 원전 해체 시장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총 100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글로벌 원전 해체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원전 해체시장은 2050년까지 250조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세계 원전 해체시장 규모를 2030년까지 약 500조원, 2050년엔 약 1000조원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관측한 바 있다. 전 세계 가동 중인 원전은 449기다. 전문가들은 2020년을 전후로 1960~1980년대 지어진 원전 대부분이 설계 기한을 다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5~2019년 76기, 2020년대 183기, 2030년대 127기 등이다. 두산중공업이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증기발생기와 같은 대형 금속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대형 방사성 금속폐기물 처리 상용화 기술’을 국책과제로 개발을 마쳤다. 다만 원전 해체시장이 본격적인 수익원으로 다가오기까지 앞으로 15년 정도의 시일이 남았다는 점에서 중소 원전업체가 그때까지 버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