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돌아올 때마다 이승의 구조를 어떻게 다시 짜야 할지 토론했다. 초기의 하계는 명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곤죽으로 뒤섞여 있었고 불안정했고 말랑말랑했다. 간혹 작은 땅덩이를 만들고 뱀이나 거북이 같은 생물을 밑에 받쳐두거나 거대한 나무를 한가운데 박아두기도 해 보았지만 다 시원찮았다."(62쪽)SF 대표 작가 김보영씨가 `저 이승의 선지자`를 냈다. `7인의 집행자`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2013년 웹진 크로스로드에 발표했던 동명의 중편연작을 재해석하고 확대해서 새로 쓴 작품이다. 책에는 비슷한 주제를 가진 단편 `새벽 기차`를 비롯해 `그 하나의 생에 대하여`라는 외전을 더했다."몸이 용암처럼 들끓었다. 지금의 인간의 형상으로 집약한 이 부분을 제외하면 내 몸의 나머지는 기체분자의 형태로 이 별을 대기처럼 두껍게 둘러싸고 있었다. 사이사이 정전기가 일고 화학반응이 일어나며 번개와 천둥이 쳤다. 나는 매 순간 그 분자체의 형태로 돌아가고 싶은 강렬한 유혹에 몸부림쳤다. 내가 왜 여기에 있을까. 그제야 내가 아직 흡수하지 못한 내 조각이 있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났다."(126쪽)"이불에 누워 나를 바라보던 아만을 생각했다. 창에서 쏟아지던 햇빛을 생각했다. 아침마다 같이 맡던 차 향을 생각했다. 생이 이대로 끝나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이 이것 하나뿐이어도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195쪽)저자는 "`저 이승의 선지자`는 원래 `7인의 집행관`을 쓴 다음 해에 잡았던 소설"이라며 "`7인의 집행관`을 쓸 때 저승을 배경으로 한 제7막의 세계관은 수십 번을 다시 짰는데, 그중 파기한 설정을 기반으로 저승을 무대로 한 이야기를 하나 만들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이어 "단지 당시에는 세계관에 명확한 그림은 없었고, 이승은 배움을 위한 학교며 저승에서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처럼 여러 학파가 교육방식에 대한 논쟁을 벌인다는 설정만 있었다. 여름에 세계관을 짜며 만약 저승에 물리적인 `삶`이 있고 생태계가 돌아간다면 어떤 형태일지를 고민하다가 `불멸의 생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에 생각이 미쳤다"고 덧붙였다.그러면서 "불멸한다면 밥을 먹을 필요가 없고, 밥을 먹을 필요가 없다면 소화기관도 배설기관도 없을 것이다"며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다면 생식기관도 없을 것이고, 숨을 쉴 필요가 없다면 코나 입이나 폐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아메바나 암세포나 분자들처럼, 경계가 불분명하고 분열과 확장을 반복하는 비정형의 생물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저승과 이승을 포함한 우주 전체가 가이아처럼 하나의 생물이라는 세계관을 만들었다"고 했다.  266쪽, 아작, 1만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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