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살수차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숨진 백남기씨 유가족에게 직접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지 10일이 지났다. 하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다.경찰이 처음 사과의 뜻을 밝혔던 건 지난달 16일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였다. 당시 이철성 경찰청장은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유명을 달리한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사흘 뒤인 19일 정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는 백씨의 전남 보성 자택 등을 찾아 유족을 직접 만나서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언론을 통해 이러한 소식을 접한 백씨의 딸 백도라지씨는 “정 오려면 (당시 책임자였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같이 오라”며 분명한 거절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이후 양측 간 접촉 논의가 몇 차례 오간 것으로 전해졌으나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물론 경찰 조직 수장의 입장에선 집회·시위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일이 어려울 수 있다. 객관적이고 의학적인 인과 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고 검찰 수사도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이 청장은 이미 사과 의사를 밝혔다. 인권을 강조하는 새 정부 코드에 맞춘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경찰 조직의 새로운 변화를 다짐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결단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용산참사, 밀양송전탑, 강정해군기지 사태 등에서 발생했던 물대포 및 차벽 사용 등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경찰 수장이 나서 사과까지 한 적은 없었다. 때문에 최근의 경찰에게서 과거보다 진일보한 면모가 보여지기도 한다. 다만 이번 경찰의 사과 속에는 ‘진정성’이 부족해보인다.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유명을 달리한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이 청장이 지난달 16일 공표했던 사과 내용이다. 미안함은 표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다는 것인지, 왜 사과를 하는 것인지는 드러나있지 않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느낌이다.당일 행사는 오후 3시에 시작됐다. 이 청장은 행사 시작 15분 전까지도 관련 문구를 수정하느라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청장의 입장에선 국민 여론 만큼이나 조직 내부 반응도 중요했을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의식한 탓에 사과의 내용이 보다 명확해지지 못했을 수 있다.하지만 사과는 받는 사람이 하는 사람의 진심을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수용될 수 있다. 청장이 직접 찾아가겠다는 뜻을 표명한지 10일이 지났다. 바뀐 정권에서 상황논리에 따라 사과를 해야 이로울 것 같아 건넨 사과였다면 그건 경찰 스스로를 위한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진심을 담은 고뇌 어린 결단이었고 적절한 표현 방식이 수반된다면 유족들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하나씩 점진적으로 쌓여져야 인권 경찰로 거듭나겠다는 다짐과 선언도 다수 국민들로부터 객관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다.경찰에 묻고 싶다.“누구를 위한 사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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