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혼자인 날들이 있다. 반복되는 일상과 스트레스에 지쳐 있다면 울진 금강소나무숲길로 가보자. 오지 중의 오지인 덕분에 무사히 살아남은 금강소나무들을 따라 걷다보면 복잡했던 머리며 마음이 깨끗해진다. 보부상과 화전민들의 치열하고 척박한 삶은 ‘살아가는 힘’을 불러일으킨다. 울진의 금강송은 신비롭다. 워낙 깊은 산속에 자리한 덕분에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에도 살아남았다. 이후에도 1000만 그루가 넘는 금강소나무들을 지키기 위해 민간인 출입을 금했고, 2006년 ‘에코투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 제한적으로 개방됐다. 지금도 울진 금강소나무숲을 걸으려면 예약은 필수다. 총 5개의 구간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40~80명으로 인원 제한을 한다. 탐방객들은 숲해설사와 함께 걸으며 숲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금강소나무숲길 탐방예약은 인터넷 누리집(http://www.komount.kr/forest_trail/ggs.jsp) 에서 가능하다. 걷기 좋은 봄이나 가을에는 적어도 보름 전에는 예약해야 원하는 날짜와 코스를 맞출 수 있다. 최대 3일전까지 예약 가능하다. 매주 화요일은 쉰다. 20명 이상의 단체 예약만 가능한 2-1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인이 걸을 수 있다. 다만 얼마전 개통한 5구간은 오는 11월30일까지 월, 목만 제한적으로 개방한다. 오늘은 ‘한국관광의 별’을 수상한 소광리 금강송 숲을 둘러볼 수 있는 3구간을 걷기로 했다. 왕복 16.3km에 달하는 3구간은 소광2리(금강송펜션)에서 출발해 저진터재~너심밭을 지나 소광리 금강소나무 군락지와 500년 소나무를 보고 원점회귀 하는 코스다. 앞서 소개했듯 소광리가 품은 금강소나무 군락지는 일제강점기의 수탈에도 살아남은 만큼 깊은 산자락에 자리한 오지 중의 오지. 지금도 울진읍에서 소광리로 들어서는 버스는 하루 2대(08:05, 15:20) 뿐이다. 첫차를 타고 소광리로 들어와 걷거나 막차를 타고 들어와 하루 묵고 다음날 걸어야 한다. ◇화전민과 보부상 흔적 구석구석출발지인 금강송펜션(십이령주막)에서 9시 출발 예정. 지난밤 빗줄기가 아직 남아있다. 먼저 도착한 탐방객들은 십이령주막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도 한다. 금강소나무숲길 트레킹에는 따로 요금은 없다. 다만 트레킹 중간 점심식사를 하려면 6000원의 식대를 내야한다. 마을 주민들이 만든 건강한 식단이 준비돼 있다.트레킹 시작 전, 숲해설사의 간단한 설명과 스트레칭이 진행된다. 거대한 몸으로 7시간 짜리 트레킹이 가능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등산화와 간식을 믿을 뿐이다. 마을 뒤로 오르면 시멘트길이 시작되지만 어느새 보드라운 흙길로 바뀐다. 앞뒤로 항상 땅이 젖어 있어 ‘저진터재’라 이름 붙었다는 첫 번째 고개에 올랐다. 마르지도 않은 이 흙길을 그 옛날 보부상들은 산더미 같은 등짐을 짊어지고 건넜으리라, 생각하니 힘들다는 말이 쏙 들어간다. 조선시대 보부상들은 울진에서 나는 해산물을 이 길을 통해 봉화로, 또 봉화에서 농산물을 들고 울진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으리라. 여기 이곳의 소나무들이 그들의 눈물 섞인 땀방울을 먹고 자라지는 않았을까. 저진터재를 지나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음지로 들어서자 속새 군락지가 맞아준다. 얇은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다. 약재로도 쓰이고 사포가 없던 시절 나무면을 갈아내는 용도로도 썼다고 한다. 금강소나무 숲길 트레킹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숲해설사와 맞춰 걷는 편이 좋다. 숲이 품은 풍요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물줄기 위 징검다리를 지나자 화전민터에 닿았다. 앞서 소개한 저진터재의 ‘저진터’에 화전민들이 모여 살았다. 주인 잃은 디딜방아와 곡식 저장고 등이 날것 그 상태로 자리를 지킨다. 잠시 후 다시 시작된 오르막, 너삼밭재다. 너삼밭재 표지판 뒤로 오르막길의 흔적이 남아있다. ◇오백년 넘은 금강소나무 깊은 숲길을 지나 임도로 나오자 물줄기가 반겨준다. 소광천이다. 기다리고 있던 새로운 숲해설사가 동행한다. 어제 내린 비로 물줄기가 불어 위험한 곳은 임도로 우회하며 이동한다. 물줄기와 숲길, 임도를 오가며 오백년 소나무에 가까워진다. 금강소나무숲길 트레킹의 묘미는 금강소나무는 물론, 계절을 오롯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천천히 걷다보면 가을을 알리는 알밤과 잣을 비롯해 예쁜 생김새와는 달리 사약중의 사약이라는 투구꽃,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잎의 모양으로 구별하는 쑥부쟁이와 벌개미취 등 가을 국화꽃도 가득하다.드디어, 마지막 물줄기를 건너자 금강소나무 군락지 안내소에 닿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식사 시간이다. 이미 기다리던 밥차에서 각자 먹을 만큼 담아 먹으면 된다. 쌀밥과 나물, 김치, 순두부 등 건강식이다. 식사 후 잠시 쉬었다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돌아본다. 처음 오픈했을 때에는 500년 된 소나무를 지나 못난이 소나무와 미인송까지 볼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500년 소나무까지만 걸을 수 있다. ◇금강소나무숲길 구간: 두천1리~바릿재~장평~찬물내기~샛재~대광천~저진터재~소광2리(편도 13.5km, 7시간 소요, 난이도 중상). 2구간: 전곡리~쌍전리산돌배나무~큰넓재~한나무재~소광2리(편도11km, 4시간 소요, 난이도 중). 3구간: 소광2리(금강송펜션)~저진터재~너심밭재~금강소나무 군락지~소광2리(왕복 16.3km, 7시간 소요, 난이도 중). 4구간: 너삼밭~대광천~아래새재~썩바골 폭포~쉼터~삼거리분기점~대왕송~장군터(9.7km, 왕복, 5시간 소요, 난이도 최상). 5구간: 두천2리~보부천골~대왕소나무~삼거리분기점~샛재~찬물내기~바릿재~두천리(편도 15km, 7시간 소요, 난이도 상). -예약 및 문의: http://www.komount.kr/forest_trail/ggs.jsp, 054-781-7118 -마을에서 민박 및 식사 가능. 민박 1인 1만원(2인 이상, 혼자 오는 경우 2만원), 식사 6000원. ▣청도 운문사운문사는 5학년 2학기 2단원에 소개된 ‘고려문화의 발전’과 ‘불교문화’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공부할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다. 고려시대는 불교가 매우 융성한 시기였으므로 그 시대의 건축 양식과 신라 말~고려 초에 걸친 운문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3월이 시작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 사이엔가 10월을 기다리고 있다. ◇삼청의 고장에 자리한 천년 고찰가을 바람에 실려 오는 향긋한 솔향. 그 기분 좋은 향내를 맡으며 찾아갈 수 있는 사찰이라면 단연 운문사를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구슬처럼 맑은 운문천의 물소리와 울창한 노송 숲이 매우 인상적인 사찰이다. 운문사가 위치한 청도는 복숭아와 감, 소싸움, 새마을 운동 발상지로 잘 알려진 고장이다. 최근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천후 경기가 가능하도록 국내 최초 자동 개폐식 돔형 경기장인 청도소싸움경기장을 개장해 매주 주말마다 흥겨운 축제마당을 펼치고 있다. 이곳은 물과 산, 인심이 맑아 예로부터 ‘삼청의 고장’으로 불리기기도 했다. 도불습유라고 해서 길에 떨어져 있는 물건이 아무리 욕심나는 것이라도 자기 것이 아니면 절대 주워가지 않는 아름다운 풍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청도의 가장 대표적인 사찰인 운문사는 청도읍에서 동쪽으로 40km쯤 떨어진 운문산(해발 1188m)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일명 호거산이라 불리기도 하는 운문산은 재약산, 가지산, 신불산, 취서산 등과 함께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고봉 가운데 하나. 먼 옛날 원광국사가 화랑도의 신조인 세속오계를 지은 명산이기도 하다. 이처럼 유서 깊은 운문산의 북쪽 기슭 햇볕 잘 드는 곳에 운문사가 자리를 틀고 앉아 있다.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때인 560년에 보양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보양국사는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살았던 승려이므로 이 같은 설명은 다소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보양국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금의 운문사 자리에다 사찰을 지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본래 진흥왕 때 누군가에 의해 초창된 사찰이 폐허가 됐고, 그 자리에다 보양국사가 다시 중창을 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중창 당시의 사찰 이름은 작압사였다. 그 후 937년에 고려태조 왕건으로부터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받으면서 작압사는 운문사로 불리게 됐다. ◇수행과 명물이 공존하는 곳 운문사는 여승들의 수도장인 만큼 경내 전체가 마치 잘 꾸며진 정원처럼 정갈하고 깨끗하다. 나무 한 그 루, 풀 한포기,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까지 여승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2016년 현재 운문사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인 스님은 대략 150여명. 속세와의 인연을 끊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청순하고 쾌활한 여승들이 엄격한 계율 속에서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다.사찰의 참 모습을 보려면 해가 진 후 또는 해가 뜨기 전에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스님들의 바루공양에 참여하고 하루나 이틀 정도 선방에 머물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삶에 대해 한 번쯤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이다. 일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방문길을 서둘러서 새벽 예불에 참여해 볼 일이다. 공부하는 스님들이 많은 운문사의 새벽 예불은 그 청아함과 경건함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새벽 예불은 일반적으로 4시 30분에 시작해서 5시 30분경에 끝난다. 6시부터는 아침 공양(식사)이 시작되는데, 일반 신도들에게도 공양간(식당)을 개방하고 있다.이밖에도 운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수령이 500년에 이르는 처진 소나무다. 천연기념물 제 180호로 지정돼 있는 이 노거수는 줄기가 땅에 닿을 정도로 처져 있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재미있는 것은 해마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 나무 주위에다 막걸리 12말을 희석해 뿌리는 일이다. 물도 아닌 막걸리를 뿌리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이 있지만 그 유래와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역사가 오래된 사찰인 만큼 운문사 경내에는 많은 문화재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신라 때 만들어진 구리 항아리인 동호를 비롯해서 비로전, 금당 앞 석등, 3층석탑, 원응국사비, 석조여래좌상, 사천왕석주등이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으며, 본래 사찰이름에서 유래된 작은 전 각인 작압전과 대웅보전, 오백나한전, 만세루등과 같은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다.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을 개설한 운문사는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 현재까지 경전연구기관으로써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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