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원 갑니다. 천천히 타세요”지난 10일 오후 4시. 의성군 의성읍 한 병원 앞 시내버스 승강장에 시내버스 한 대가 다가와 멈춰 섰다. 출입문이 열리자 감청색 모자를 쓴 안다오(35·여)씨가 내리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어르신들에게 도리원행 버스임을 큰소리로 알렸다. 이어 어르신들이 손에 들고 있던 무거운 짐을 받아 버스 위로 옮기면서도 내리는 할머니들에게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다. 안다오씨는 의성군이 한시적으로 시범운영 중인 ‘버스 안내 도우미’이다. 2006년 베트남에서 의성으로 시집와 두 돌 된 아이를 둔 엄마다. 어린아이는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곧장 출근했다. 의성에 있는 유기농연구소에서 8년간 근무하다 최근 시내버스 도우미가 됐다. “베트남 호찌민시에도 버스 도우미가 있어 낯설지는 않아요. 아직 길을 잘 모르고 시간대를 몰라 조금 어려워요. 고향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여기는 시부모님이 계시는데 승객들 모두 부모님처럼 대해줘서 좋아요. 너무 행복해요.” 옆에서 승객들의 짐을 받아 챙기고 있던 동료 이경희(58·여)씨는 이런 안다오씨의 행동이 귀엽다는 양 연신 웃음을 보였다. 요양보호사로 7년간 일했던 이씨는 외손녀가 태어나면서 요양보호사 일을 그만뒀다. 외손녀가 최근 돌을 지나자 의성군 시내버스 도우미 선발에 응시해 뽑혔다. 이씨는 할머니 승객은 ‘어머니’로, 할아버지 승객은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저도 50대 후반인데 어르신들이 새댁 취급하시네요. 요양보호사 일를 해서 그런지 ‘어머님, 어르신’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네요. 무조건 물건을 들어준다고 모든 승객들이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도 대체로 호응이 좋아요.” ‘버스 안내 도우미’는 노인 인구가 전국 최고인 의성군이 어르신들의 버스 이용 시 도움을 주기 위해 지난달 18일부터 올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도입한 시책이다. 일자리 창출사업과 연계해 시범사업으로 시행 중이다. 현재 도우미는 내국인 2명, 다문화가정 3명 등 총 5명의 여성으로 구성됐다. 2인1조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 장날처럼 어르신 승객이 많은 날의 출퇴근 시간은 1시간씩 앞당긴다. 급여 등 모든 비용은 의성군에서 부담한다. 의성지역을 운행하는 의성여객 소속 버스 23대에 순차적으로 승차해 어르신 승객들을 돕고 있다.  무릎이 아파 병원에 다녀온다는 조모(67·여)씨는 “도움이 되니 좋지. 할매들은 힘이 없어. 물건 들어올리기도 힘들어. 부축만 해줘도 한결 수월하지”라며 버스 도우미 제도에 반색을 표시했다.한모(80·여)씨는 “얼마 전에 버스에서 내리는데 다리도 아프고 힘도 없어 보따리를 질질 끌었어. 생전 처음 보는 할배가 들어줘서 간신히 내렸어. 나보다 연세 많은 할매들이 많은데 의성군이 아주 잘하는 것이지”라고 도우미 제도를 적극 반겼다. ‘버스 안내 도우미 제도에 불편함이 없느냐’는 질문에 신모(77)씨는 “그런거 전혀 없어. 노인들이 많으니까 안전하고 너무 좋지. 물건만 들어줘도 잘하는 것이야”라며 손사래를 쳤다. 곁에 있던 권모(70·여)씨는 “도우미들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네. 나도 어릴 적에 18살 때부터 3년 동안 강원도에서 직행버스 안내양을 했어. 교복처럼 흰카라 근무복 입고 그 때는 한가락 했지”라며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늦은 오후라 그런지 의성읍에서 봉양면까지 가는 버스에는 할아버지 3명, 할머니 6명, 학생 4명이 탔다. 무거워 보이는 박스와 짐 보따리를 지닌 어르신은 3명이었다. 이날 도우미들의 모습과 지난 80년대까지 운영됐던 버스 안내양과의 차이는 무엇보다 도우미 나이가 20대에서 50대 후반까지로 많아졌다. 풋풋한 20대의 나이 어린 안내양이 승객들을 안으로 밀어 넣은 뒤 출입문 난간을 ‘탕탕’ 두드리며 ‘오라~이’라고 출발 신호를 보내던 모습도 없어졌다. 흰카라 달린 근무복을 입고 승객들로부터 받은 차비나 토큰, 또는 회수권 등을 집어 넣던 허리에 두른 두툼한 전대도 없다. 대신 주황색 근무복 가운에 ‘버스 안내 도우미’란 패찰만을 목에 걸었다.  “아직 홍보가 덜돼서 그런지 봉사단체에서 나와서 봉사하는 줄로 아는 분들도 있지만 반응은 좋습니다. 하지만 도우미들이 물건만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만약 어르신들을 부축하다 넘어지면 둘 다 다칠 수 있어요. 출발시간도 더 느려지고…”버스기사 김모(62)씨는 승객과 도우미들의 안전까지 챙기며 도우미들이 취했으면 하는 행동까지 세심하게 조언했다.  김주수 의성군수는 “의성은 고령인구 비율이 전국 최고인데 노인분들이 무거운 짐을 들고 버스를 이용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항상 안전이 염려스러웠다”며 “시범운영기간 동안 주민들의 반응이 좋으면 내년도 본예산에 사업비를 편성해 확대시행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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