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조선의 사색당파 당쟁 때 ‘난진이퇴(難進易退)’를 실천한 영남의 선비 산택재(山澤齋) 권태시(權泰時·1635~1719)와 관련한 학술대회가 27일 영양에서 열린다.벼슬아치들의 4색 당파싸움이 극에 달했던 조선 중기(숙종 16년) 당시 산택재 권태시는 벼슬에 뜻이 없어 세거지인 청송 진보현(眞寶縣)에서 예학(禮學) 연구에 몰두하다가 학행(學行)으로 천거돼 장악원 주부에 임명됐다.충청 회덕군에 갓 부임한 신임 현감 권태시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고된 삶을 낱낱이 적은 ‘돌직구 상소문’을 조정에 올렸다.당시 조정은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 등 사색당파로 갈려 연일 당쟁을 벌였다.“이미 겨울은 깊어지는데 국법이 두려워서 환곡을 갚은 자는 끼니가 끊겨 벌써부터 새 환곡을 학수고대하고 있고, 미처 갚지 못한 자는 법에 의거해 형틀에 몸을 맡겨야 할 지경입니다. 이런데도 국법대로 환곡을 회수할 수 있겠습니까”“이것이 비록 소인이 맡은 일개 현의 일이지만 다른 고을도 마땅히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일이거늘, 조정 대신들의 생각이 지금 여기에 미치고 있는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등의 내용이다.이 상소문은 최근 북핵으로 급박해진 안보 위기 속에서도 연일 당쟁만 반복하는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안동 권씨 부정공파 대곡·문해문중 산택재 권태시의 상소문은 최근 문중에서 산택재 문집을 번역, 국역본을 발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1694년(숙종 20년) 사색당쟁이 더욱 극심해 갑술환국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당쟁 중단을 요구하는 상소문을 수차례 올렸지만 뜻이 관철되지 않자 벼슬을 그만두고 영양으로 낙향, 난진이퇴를 실천하며 학문에 전념했다.그가 회덕현감 재직 당시 경험을 살려 백성들의 입장에서 고을 수령이 지켜야할 도리를 적은 목민관 지침서인 ‘거관요람’은 그의 증손자 권방이 친구인 다산 정약용에게 보여주면서 ‘목민심서’ 집필의 기초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학술대회는 이 상소문을 포함한 선신 등 산택재 문집 국역본을 토대로 권태시의 민본주의와 애민사상을 되새기고 400년 전 사색당쟁을 반추해 오늘을 비춰 보자는 취지로 열린다.박영호 경북대 교수(한문학과)가 좌장을 맡고 김언종 고려대 교수(한문학과)와 신도환 안동대 교수(한문학과), 김세중 연세대 명예교수(국제관계학과), 이성호 성균관 한림원 교수, 강일호 성균관유도회 부회장, 김명균 교남문화 대표 등이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