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의 엄청난 역사왜곡이 군민을 철저히 농락하고 있다.달성군이 우리나라 최초 피아노 유입이 달성 화원읍 사문진 나룻터라고 엄지 손가락 추켜세웠다.하지만 본지 취재에서 달성이 아닌 부산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부산에서 기록이 존재하는데도 달성군은  철저한 고증없이 최초 유입이란 명분으로 엉터리 관련 행사를 주도했다.때문에 달성군과 달성군문화재단은 역사적 진실왜곡과 짜맞추기식 행사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달성군 피아노 유입 역사 왜곡달성군은 2013년 달성문화재단 주최로 한국최초 피아노 유입과정에 대한 학술 토론 회의를 가졌다.학술 토론 회의에서 “손태용 한국음악문헌학회 대표는 1900년 3월 26일 사이드보텀(한국명 사보담)선교사를 통해 달성군 화원의 사문진 나루터로 피아노가 유입됐다”고 주장했다.사보담은 피아노가 도착하기 전 1900년 3월 26일부터 3일간 피아노를 이동하는 과정을 기록했다.미국에 있는 부모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기록과 2009년 사보담의 후손들이 부산 박물관에 기증, 한국최초의 피아노 유입 사실이 밝혀졌다는 근거를 내세워 달성군은 100대 피아노 행사를 만들었다. ▣부산이 먼저다달성군의 주장에 부산이 정면 반박했다.이 모 부산세관박물관장은 이보다 3년 앞선 1897년 제3대 부산해관장 헌트가 부산주재 부영사를 겸임할 때 빅토리아여왕 즉위 60주년 기념행사를 열면서 그의 부인이 초청인사에게 피아노선율을 선사했다고 주장했다.그는 Hunt부인의 피아노연주는 아주 훌륭했다라는 내용이 우리나라의 영자신문인 코리아헤럴드와 코리아타임지 등에 칼럼을 실었던 미국인 Robert D, Neff의 칼럼 ‘Jonathon H Hunt’에 기록돼 있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네프(Robert  D, Neff)와 명지대 정성화교수와 공동 출판한 ‘Korea throug western eyes’에도 나타나 있다는 사실을 추가로 밝혔다.이 박물관장은 부산항이 1876년 개항을 했고 외국인 선교사들이 부산항을 통해 유입돼 이 시기에 피아노가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달성 피아노 최초 유입 거짓(?)이 모 부산세관박물관장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최초 피아노 유입을 강조하기보다는 시민과 접하는 과정을 이야기를 만들어 축제로 승화시키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최초 유입이라는 말에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최초라는 용어는 지방단체에서 사용하기는 가볍게 처신한 것으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피아노 최초 유입지에 관한 자료는 2013년 학술 토론 회의때 충분히 검증될 수 있었던 내용이다.달성군민들은 매년 100대 피아노 행사에 수억원씩 퍼붓는 달성군의 대표 행사가 역사적 사실이 왜곡된 관련행사와 다국어로 된 안내방송은 국제적인 망신이라고 맹폭을 가했다.실제 주민 K씨는 “이러한 사실을 수년 전부터 달성군내 일부 주민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했다”고 귀뜸했다.그는 “이제라도 우리나라 최초 피아노 유입지라며 전국 홍보에 열을 올리며 사실을 왜곡하는 행태는 지양돼야 한다”고 뼈있는 말을 했다. ▣달성문화재단 역사 왜곡 그만해라최근 달성문화재단 관계자는 모 일간지와의 기자회견에서 “100대 피아노음악회는 국내 최초의 피아노가 1900년 3월 26일 달성군의 사문진 나루터로 유입되었던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발굴, 이를 최초로 100대의 피아노를 동원해 콘서트화한 독특한 문화 콘텐츠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고 말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달성군의 이 같은 행태가 자칫 학생들이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왜곡된 역사를 사실인양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달성군은 올바른 역사 교육을 위해서라도 우리나라 최초 피아노 유입이 달성군 사문진이 아니다고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달성군민 L씨는 “최초 피아노 유입이 부산인 줄은 알았지만 이제라도 달성군민에게 알릴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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