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을 떠난지 반백년 만에 본향으로 되돌아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한마디로 금의환향(錦衣還鄕)입니다. 마을은 물론 안동의 큰 경사입니다”27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하회탈(국보 제121호) 및 병산탈을 환수해 온 류왕근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보존회 이사장은 잃어버렸던 자식을 찾은 양 기뻐했다.이날 하회탈 및 병산탈 전부와 기탁자료 7점을 포함해 총 8종 20점이 안동으로 영구히 돌아왔다. 지난 1964년 고향 안동을 떠난지 꼭 53년 만이다.하회탈 및 병산탈은 전날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상태확인을 거쳐 특수포장된 뒤 이날 오전 10시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을 향해 출발했다.오후 1시 20분께 유물을 싣고 마을에 도착한 5톤 트럭은 마을안길을 따라 충효당까지 10여분간 운행하며, 50여년 만의 귀향을 자축했다.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 하회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은 느닷없는 ‘국보 귀향’ 소식에 반가움을 표하며, 귀향행사를 지켜봤다.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관 앞에서 고유제를 올린 하회탈 등은 2시 50분께 안동시립민속박물관으로 옮겨져 박물관 수장고에 영구히 모셔졌다.안동시립박물관에서 환수 장면을 지켜보던 시민들도 “고향을 떠나 국보로 지정된 뒤 되돌아왔으니 금의환향이다”라며, 국보의 귀향을 일제히 반겼다.하회탈 및 병산탈은 1930년대 후반부터 몇몇 연구자들의 연구를 통해 진가가 알려지기 시작했다.1954년 류한상 전 안동문화원장이 아서 맥타가트 미국문화원 공보관에게 소개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알려졌다.1958년 제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양반·선비마당이 공연됐다. 당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역사성과 가치를 인정받았다.1964년 2월 탈의 관리와 보존 차원에서 고향 하회마을을 떠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그 해 3월 국보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위탁 형태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해 왔다.국보로 지정된 탈의 일부는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 부분 전시나 해외 순회전시에서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다.안동에는 1997년 제1회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개최 당시에 3점, 2003년 안동대학교박물관 특별전에서 5점(각시,양반,선비 등)이 내려온 바 있다.1960년대 중반부터 주민들의 하회탈 환수 요구가 간헐적으로 있었다.하지만 그때마다 ‘보관시설을 먼저 만들라’는 통보만 받았다.1964년 8월 21일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에는 ‘안동 하회동에 보존각 설치가 완료된 후 본고장으로 이관 보존토록 한다’는 조항이 기록돼 있다.1972년 12월 하회마을에 징비록(국보 제132호)과 서애유물(보물 제460호)을 보존하기 위해 영모각을 준공하면서도 하회탈을 마을로 돌려달라는 주민들의 환수 요구가 있었다.2003년 안동대학교 특별전 이후에도 환수운동이 벌어졌지만 또다시 보존과 관리 문제 등으로 환수되지 않았다.작년에는 두 차례의 실사를 거쳐 안동민속박물관에서 개최한 ‘국보, 하회탈’ 특별전에 하회탈 및 병산탈 모두가 시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안동시는 올들어 지난 1월부터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과 기탁자료 전체를 환수하기 위해 하회마을 및 병산마을 주민과 협의를 진행했다.특히 안동민속박물관에서는 지난 6월부터 하회탈의 보존환경 조성을 위해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의 협조 아래 수장고 보존 환경 컨설팅을 실시했다.안동민속박물관의 목재문화재 보관전용 수장고 내 항습시설과 화재예방 설비 점검은 물론 조습패널과 국보 제121호가 격납될 밀폐장 설치 등 수장시설 및 보관시설의 최적화를 완료했다.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이날 고향 안동에 영구히 되돌아와 자리를 잡았다.안동시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소유자인 하회·병산마을 주민과 협의를 통해 국보 제121호의 원본 이미지를 안동시 홍보자료로 적극 활용하겠다”며, “내년에는 상설전시실 일부를 개편해 국보 제121호 원본을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이어 “문화재청과 협의를 통해 하회탈과 관련된 연구와 문화재 3D스캔 등 고정밀 실측도 진행한다”며, “연구자료 확보 및 복제품을 제작해 다양하게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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