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더위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폭염으로 사람이 죽고, 가축은 몰살 당했다.대구·경북에서 폭염으로 가축 6만3400여 마리(닭 6만200여 마리·돼지 1300여 마리)가 폐사했다.더위에 약한 노인과 아이들은 폭염에 지쳤다.폭염 속 어린이집 통원 차량에서 방치된 네살박이 아이가 숨지는 사건까지 터졌다.축산농가는 초비상이다.애지중지 키워온 가축들이 떼죽음 당할까 대형 선풍기를 동원 가축 살리기는데 정성을 쏟고 있다.지금 대한민국은 맹열 더위에 펄펄 끓고 있다.축산농가는 화탕지옥(火湯地獄=엄청난 크기의 무쇠솥에 물을 끓이고 있는 지옥)이 다로 없다고 입을 모았다.대구시와 경북도도 폭염대책이라는 총동원령을 내렸지만 역부족이다. ▣폭염 차 방치된 네살박이 숨져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 4살 어린이가 차 안에 방치돼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이 아이는 문이 잠긴 뜨거운 차 안에서 무려 7시간이나 홀로 남겨져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18일 경기 동두천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 50분쯤 동두천시의 한 어린이집 차 안 뒷좌석에서 A(4) 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A 양은 이날 오전 9시 40분쯤 다른 원생들과 함께 통원 차량을 타고 어린이집에 왔지만 미처 차에서 내리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어린이집 측은 7시간 뒤인 오후 4시야 돼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해당 교사가 ‘아이가 등원하지 않았다’며 부모에게 연락을 했다가 “정상 등원했다”는 부모의 말을 듣고서야 뒤늦게 A 양이 없어진 걸 안 것이다. 어린이집 관계자들이 부랴부랴 차 안에서 A 양을 발견했지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어제 동두천시의 낮 최고기온은 32.2도로 폭염상황이 지속됐다. 경찰은 숨진 어린이의 사인을 조사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요청하고, 어린이집 교사와 운전기사 등을 상대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의성 축산농가 폭염과의 전쟁“이 상태로 가면 축산농가들 모두 절단납니다. 폭염이 계속되면 산란율이 계속 떨어져 사료값의 반도 못건집니다. 전기세도 장난이 아닙니다.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어요.”18일 의성군 안평면 금곡리의 한 산란계 양계장은 벌써부터 뜨겁게 달궈진 열기로 가득했다.농장입구에서 자외선 소독을 한 후 방역복과 비닐장화를 착용하고 만난 흥생양계 관리인 김영석(51) 씨는 푹푹 찌는 무더위에 볼멘소리로 인사를 대신했다. 의성은 이날 37도를 기록하는 등 8일째 낮 최고기온이 35~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경보 상태이다.이 곳에서는 산란계(브라운종) 닭 10만여 마리가 하루 9만5000여 개의 달걀을 생산한다. 김 씨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선 계사 내부는 현대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4단 케이지 안에 있는 닭들이 내는 울음소리로 시끄러웠다.한쪽 편에서는 대형 선풍기 60여 대가 쉼 없이 돌며 더운 공기를 밖으로 밀어냈다. 내부 온도를 낮추기 위해 양쪽에 마련된 환기시설도 모두 개방했다. 내부를 둘러보는 짧은 시간에도 연신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계사 내부 온도는 35~36도를 오르내렸다. 닭들도 가쁜 숨을 몰아쉬는 듯 했다.김 씨는 “닭은 땀샘이 없어 폭염이 계속되면 위험하다. 더위 때는 폐사율이 3~4 높다. 현대식 시설이지만 이 때 관리를 잘해야 한다”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의성 축산농가 초지상인근 안평면 괴산리에서 15년째 육계를 사육 중인 이신형(55) 씨의 사정은 조금 나았다.700여㎡ 규모의 계사 4동에서 35일간 키운 닭을 며칠전 출하했다. 그 뒤 병아리 3만 마리를 새로 입식했다. 병아리는 성숙한 닭보다 더위에 강하다. 통상적으로 입식 후 20일이 넘어서면 폐사가 발생하기 시작한다.“폭염이 계속되니 병아리보다 사람이 더 힘드네요. 30분마다 한 번씩 닭들을 일으켜 세워줘야 하거든요. 닭들이 더위에 움직이지 않으면 폐사합니다. 더우면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반대로 닭들은 시원한 곳을 찾아 한 곳에 모입니다. 결국 포개면서 죽습니다. 지난해는 한꺼번에 4000여 마리가 죽기도 했어요.”이 씨는 무더위에 대비해 계사 한 동당 대형 선풍기 12대씩을 설치했다. 그래도 선풍기 작동이 조심스럽다. 바람을 많이 쐬면 감기에 걸려 사육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마지막에 선풍기를 돌린다.계사 지붕은 열차단용 보온덮개를 4겹으로 시공했다. 사육 마리수를 겨울보다 여름에는 적게 잡는 것도 무더위를 이기는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이 씨는 계사 한 동에 겨울에는 1만2000여 마리를 사육하지만 여름에는 6000~8000마리로 대폭 줄인다. 계사 안 온도를 낮추기 위해 물을 뿌리는 분사시설도 갖췄다. 하지만 습기가 높아지면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따라서 잠시 온도만 낮춘 뒤 곧바로 작동을 멈춘다. 출하 시기를 앞두고 무더위가 찾아오면 초비상이다. 더위에 지친 닭들의 폐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실내온도가 가축 살린다오후 3시께 찾은 금성면 초전리 협성농장(대표 장일근·58·대한양계협회 의성지회장)은 폭염이 절정에 달했다. 장 지회장은 대구에서 섬유공장을 23년간 운영하다 8년전 귀농해 육계를 사육 중이다.장 지회장을 따라 들어간 사육장에는 출하를 불과 4일 앞둔 몸무게 400g 안팎의 육계 6만 마리가 있었다. 출하 당일에는 850g까지 살이 찐다. 온도컨트롤 장치 게기판에는 외부온도 35.5도, 내부온도 31.4도를 가리켰다.  “실제 바깥 온도는 계기판보다 높아요. 내부온도의 경우 조금 더 올라가면 심각해집니다. 시설투자가 되기 전인 4년전 어느날인가 하루에 3000~4000여 마리가 죽어나갔어요. 그 때만 생각하면 끔찍합니다.”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닭 목덜미에 물도 뿌려줘 봤다. 목덜미에 개별 송풍까지 해봤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단다. 오히려 닭들의 스트레스만 잔뜩 올리는 역효과를 가져왔다.이 같은 과정을 겪은 뒤 최신설비를 갖췄다. 이제는 타 농장보다는 더위에 강하다. 제빙기를 이용해 만든 얼음을 물에 타서 주기도 한다. 사료에 비타민 등 더위에 도움을 주는 하절기 보강사료도 사용한다.그래도 3개동 3000여㎡ 규모의 이 농장에서는 연이은 폭염으로 하루 80여 마리가 폐사하고 있다. 평소보다 2배 많은 양이다.오후 4시 30분께 방문한 단촌면 병방리 자유농장(대표 최창식·51·대한양돈협회 의성지부장)도 한낮 무더위의 기세가 좀체 꺾이지 않았다. 이곳은 어미돼지(모돈) 550마리, 새끼돼지(자돈) 2500마리가 사육 중이다. 출생 후 60일까지 이곳에서 사육한 뒤 위탁농장으로 보낸다.“온도에 따라 환기량을 조절하는 자동콘트롤장치가 돼 있어요. 여름에는 실내 온도를 분만·임신사는 25~26도, 어린새끼들이 있는 자돈사는 30도를 유지해요. 새끼들은 더위를 덜 타기 때문에 자동으로 환기만 시켜줍니다”최 지부장은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전기료가 평소보다 배 이상 많이 나온다고 걱정스러워 했다.최신시설을 갖춘 사육장 내부는 깨끗했다. 가마솥 더위의 바깥과는 달리 내부는 시원한 바람이 돌았다. 사육장 내 통로 양 옆에는 케이지에 갖힌 어미들이 누워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대구·경북 온열질환 94명낮 최고 기온이 35-37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계속되는 대구·경북지역의 온열 질환자가 급증하고있다.18일 대구시에 따르면 올해 대구지역 온열 질환자 수는 1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명보다 50% 늘었다.기상이변에 따른 지구온난화 여파로 장마가 예년보다 일찍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도심 열섬 현상이 발생한 때문으로 분석한다.경북에서도 현재까지 온열 질환자 수는 7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0명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열탈진 43명, 열사병과 열경련 각각 11명, 열실신 6명, 기타 1명 등이다.연령별로는 60대 이상이 27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30∼40대 21명, 50대 18명, 20대 6명 순이다.’ ▣대구시 경북도 대책 마련 분주대구시는 인명피해 예방에 중점을 두고 노약자, 홀몸노인 등 폭염 취약계층에 대해 사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사회복지사, 홀몸노인 생활관리사 등 재난 도우미 2733명이 이들을 수시로 방문하거나 안부 전화를 걸어 건강을 체크하도록 했다.시민들이 무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경로당, 금융기관 등 935개소를 ‘무더위 쉼터’로 운영하고 도시철도 1·2호선 역사 61개소와 대구실내빙상장 등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개방했다.도심 열섬현상 완화를 위해 도로에 물을 뿌리는 ‘클린로드시스템’과 분수 등 수경시설 191개소를 가동하고 살수차도 수시로 동원하고 있다. 경북도는 자연재난과장을 팀장으로 2개 반(총괄 상황·건강관리지원) 11명으로 태스크포스를 운영하고 관련 부서, 유관기관, 23개 시·군과 폭염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노인 돌보미, 이·통장 등 재난 도우미 1만7000여 명을 활용해 홀몸노인, 거동불편자 등 취약계층과 농·어촌 주민 건강관리를 강화했다. 지금까지 취약계층 방문 1만2800여 회, 안부 전화 3만2000여 회 등을 했다.각종 사업장에는 오후 2-5시 무더위 휴식 시간제를 운용하도록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폭염 대비 국민 행동요령 홍보물도 배포했다.농가에도 가축 관리요령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23억원을 투입해 축사 단열처리, 환기시설, 안개분무시설 등 지원에 나섰다. ▣근로자 열사병 사망 사업주 엄벌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정부가 열사병 등 온열질환 예방수칙을 위반하는 사업장에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는 등 엄정한 조치를 취한다. 고용노동부는 18일 폭염과 관련해 열사병 예방 활동 및 홍보를 본격화하고 열사병 발생 사업장 조치 기준 지침을 지방 고용노동관서에 전달했다.고용부 지침은 근로자 온열질환(열사병·열경련·열탈진 등)으로 사망할 경우 근로감독관이 현장조사를 통해 사업주의 열사병 예방수칙 이행 여부를 확인한다.위법이 발견되면 사업주를 사법처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은 옥외 작업자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 등으로 위험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모든 관련 작업을 중지한다.안전보건 전반에 대한 고강도 감독을 하도록 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산업재해자는 최근 3년간(2014-2017년) 35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지난해 12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 개정되면서 이 수칙을 지키지 않은 사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김대훈·박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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