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 한 많은 남화태(사할린) 징용 왔네. 철막 장벽은 높아만 가고/ 정겨운 고향길 막연하다."10일 오후 경북 문경 문화예술회관에서 울려퍼진 사할린 4세 신아리나(5)의 `사할린 아리랑`은 청아해서 더 구슬펐다. 신아리나는 "아리랑은 저희 할머니가 가르쳐주셨어요. 한국에 와 보니까 좋아요"라며 웃었다. 제11회 문경새재아리랑제가 이날 문화원 다목적홀에서 열리는 시민경창대회와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12일 오후 3시 문화예술회관에서 본 공연을 펼친다. 문경문화원과 한겨레아리랑연합회가 여는 이번 축전은 세계 속 아리랑의 위상을 확인하는 자리다. `1세대가 넘어간 아리랑고개, 3세대가 넘어 온다`를 주제로 정한 아리랑제의 본 공연은 중국, 일본, 러시아에서 온 동포들의 아리랑이 함께 한다. 중국 동포 2명, 일본 동포 1명, 라시아에서는 3개 단체에서 동포 16명이 참여한다. 총 14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는 행사 제명 앞에 `디아스포라 아리랑`이라는 수식이 함께 한다. `분산`이라는 뜻의 디아스포라는 팔레인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에서 유래한 말이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긴아리랑` `본조아리랑` 등을 노래하는 재일동포 2세 소프라노 전월선(59)의 무대. 전월선은 2013년 노래인생 30년 기념 공연 `소프라노 전월선 30주년 기념 리사이틀`에서도 아리랑과 한오백년(정선아리랑)을 부를 정도로 아리랑에 애정이 크다. 전월선은 "아버님의 고향에서 해외 여러 동포들과 함께 아리랑 축제에 참석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녀의 부친은 경남 진주 태생으로 이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아버님과 함께 어머님도 진주 분이세요. 아버님과 어머님은 일본에서 만나셔서 결혼을 하셨는데, 제가 어릴 때부터 아리랑을 가르쳐 주셔서 들었고 배웠죠. 민족 무용도 가르쳐주셨죠. 저는 오페라 가수이기 때문에 세계 여러 노래를 하는데 데뷔 리사이틀 때부터 앙코르로 아리랑을 불렀어요."전월선이 이번 공연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곡도 있다. 가곡으로 재해석된 `문경새재아리랑`이다. 문경 방문은 처음이라는 전월선은 이날 문경문화원과 한겨레아리랑연합회가 축전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문경새재에서 연 고유제(告由祭)에도 함께 했다. 국가와 사회, 가정에 큰일이 있을 때 관련 신령에게 그 사유를 고하는 제사가 고유제다. 전월선은 "아버님, 어머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한민족이 문경새재아리랑을 비롯해 다양한 아리랑을 함께 부르고 시민들도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는 것이 참 기쁩니다"라며 만족해했다. 중국동포들은 `장백의 아리랑` `기쁨의 아리랑` `경상도아리랑`을 부른다. 중국 지린성 옌볜 가무단 단원들인 강화·최려령 부부가 중국동포들을 대표한다. 강화는 "한국에 공연을 자주 왔는데 문경은 처음이에요. 하지만 고향에 온 것 같아요"라며, "큰 공연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의미 있고 묵직함으로 다가오는 공연은 우리 부부에게 처음이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기대했다. "중국을 대표한다는 것으로 인해 어깨에 짐을 지고 있는 기분이지만 동포로서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한국예술종합학교를 다니며 한국에서 7년간 유학생활을 했다는 최려령은 중국에 우리의 민족 문화를 알리고 전승시키는데 노력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쉽지 않은데 흩어져 있던 같은 민족이 이렇게 한데 모여 힘을 얻고 가요. 친정에 와서 많은 반찬을 싸들고 다시 신혼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라며 웃었다. 러시아동포들은 `카레이스키아리랑` `사할린아리랑`을 선보인다. 아쏠 무용단의 아쏠 앙상블 단장인 사모스키나 이리나는 "러시아 다문화 다민족을 대표해 이번 아리랑제에서 러시아 문화를 소개하려 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본 공연에서는 사할린 동포2세 작곡가 김세르게이(75)가 멜로디를 만든 창작 아리랑이 2편이 초연한다. `카레이츠아리랑`과 `아리랑나라`다. `카레이츠아리랑`은 시인 명동욱의 시에 멜로디를 만들었다. 명 시인은 1960년대 북한 출신 러시아 유학생으로, 러시아 동포사회를 전전하다가 행방불명됐다. 시는 20대 초에 결혼, 러시아로 유학을 와서 자유를 체감한 명동욱이 북에 두고 온 어린 아내를 그리며 지은 것이다. `무심한 세월만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고 체념하고 있다. `아리랑나라`는 작사가 김봉산이 지은 노랫말에 멜로디를 붙인 것이다. 아리랑제 실행위원인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남북정상이 백두산 정상에서 가수 알리의 진도아리랑으로 함께하는 뉴스를 접하고 작사했다"고 소개했다. 현한근 문경문화원장은 "아리랑이 세계 곳곳의 후손들에게 이어질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김 상임이사는 "이번 아리랑제는 길고 지루하고 어려울 수 있다. 100년간 디아스포라의 난점이다. 하지만 한번은 극복해야 한다. 그런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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