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있는 분황사지와 구황동 원지 유적이 국가지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경상북도 `경주 분황사지(慶州 芬皇寺址)`와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慶州 九黃洞 園池 遺蹟 一圓)`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 지정 예고된 유전 2건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어도 다른 시기에 제작된 다른 유적이다. 한때 구황동 원지가 분황사에 속한 사원지(寺園池)로 여겨진 적이 있다. 발굴조사 결과, 출토되는 다양한 유물 시기를 추정해 볼 때 두 유적은 별개로 밝혀졌다. `경주 분황사지`는 신라의 대표 사찰 `분황사`가 있던 곳이다. `삼국유사`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분황사`는 선덕왕 3년인 634년에 창건됐다. 신라의 승려 자장과 원효가 이 절에 머무르면서 불법을 전파했다.  1990년부터 2014년까지 발굴조사가 이뤄져 현재 경역 내·외부를 확인했다. 창건 당시 신라 최초 품(品)자형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當式) 가람으로 축조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후 세 차례 중건을 거쳐 1609년에 현재 금당인 보광전을 조성해 지금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분황사는 황룡사, 흥륜사와 함께 신라 삼국통일 이전 왕경인 경주에 조성됐던 칠처가람(七處伽藍)의 하나다. 국보 제30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이 존재하고 있다. 장기간 체계적 발굴을 통해 가람 배치 양상과 그 변화뿐만 아니라 경역의 대부분을 규명한 사찰로써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은 처음 경주 황룡사지와 관련한 전시관 건립 터로 선정돼 1999년 시굴조사가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통일신라 시대 석축, 담장, 우물 등 유적을 확인하고, 2004년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원지 유적이다. 원지는 중심부에 크고 작은 인공섬 2개가 있다. 그 주위에 입수로와 배수로, 건물지, 담장, 축대가 조화를 이룬다. 또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원지의 조성 시기, 변화상, 공간배치를 알 수 있어 통일신라 시대 조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구황동 원지는 동궁과 월지, 용강동 원지에 이어 원지의 조성연대, 규모, 내부구조를  확인한 세 번째 신라왕경 원지 유적으로 희소성이 있다. 문화재청은 30일동안 예고 기간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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