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독립 유물들이 국가 지정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만해 한용운 심우장`과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및 유물`을 각각 사적 지정, 문화재 등록 예고했다. `만해 한용운 심우장`은 독립운동가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이 1933년 서울 성북구에 건립해 거주한 곳이다. 독립운동 활동과 애국지사들과의 교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측면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심우(尋牛)`는 소를 사람에 비유해 `잃어버린 나를 찾자`는 의미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이른다. 심우장이 놓이는 방향을 총독부 방향을 피해 동북향으로 잡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를 통해 한용운의 독립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한용운이 남은 삶을 보낸 이 곳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사적으로 지정되면 2017년 10월 등록문화재 제519호 `구리 한용운 묘소`와 함께 항일독립운동 정신을 기릴 수 있는 뜻 깊은 장소가 된다.  이봉창 의사(1900~1932) 관련 등록문화재로 예고된 유물은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백범(白凡) 김구에게 보낸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 3건이다.`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이 의사가 일왕을 처단하고자 하는 결의를 기록한 국한문 혼용 선서문이다.이 의사의 대표적 항일투쟁 유물인 이 선서문은 1931년 12월 13일 김구가 이 의사를 안중근 의사의 아우인 안공근의 집으로 데려가서 선서식을 거행하고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는 1931년 12월 24일 이봉창 의사가 김구에게 의거자금을 요청한 내용을 담은 서한이다. 내용 중 의거 실행을 `물품이 팔린다`라는 대체 용어로 약속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는 1931년 12월 28일 김구가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 도쿄에 있는 이 의사에게 의거자금 100엔을 보낸 송금증서다. 이 의사가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일본 국왕을 향해 폭탄을 던진 의거의 전개과정과 항일독립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의사의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도 문화재적 가치를 높인다. 이 의사의 의거는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의 기폭제가 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독립운동 전선에 새 활력을 불어넣은 역사적 사건이다.`만해 한용운 심우장`과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및 유물`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지정·등록될 예정이다.한편문화재청은 `인제성당`과 `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춘천수련소`를 각각 등록문화재 제 742, 743호로 등록했다.`인제성당`은 한국전쟁 당시 포격으로 상부구조가 파괴돼 기존에 남아 있던 건물의 콘크리트 기초를 그대로 이용해 건축했다. 특히, 본당과 사제관을 한 건축물로 축조한 방법은 동시대 다른 성당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다. 이는 중요한 건축적 특징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춘천수련소`는 강원도 선교를 담당할 수녀 양성을 위한 시설이다. 1959년 신축 이후 1962년 증축되는 과정에서 시기를 달리하는 건물 2동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한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건축적 특징이다. 강원도 선교활동 중심지라는 공간특성에서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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