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단논법: 다른 사람들은 죽는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죽지 않는다”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의 ‘창백한 불꽃’이 번역·출간됐다. ‘롤리타’(1955)의 대중적 성공 이후 1962년 출간한 장편소설이다. 나보코프만의 치밀한 언어유희와 실험적인 형식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999행의 미완성 시 ‘창백한 불꽃’과 이에 붙인 머리말, 주석, 색인으로 구성됐다. 찰스 킨보트 박사가 저명한 미국 시인 존 프랜시스 셰이드(1898~1959)의 유고 ‘창백한 불꽃’에 붙이는 주석서로, 머리말에서부터 킨보트가 편집자에게 전하는 교정 지시가 남아있는 채로 소개된다. 킨보트는 주석서를 집필하게 된 계기를 “노시인 셰이드와 나눈 우정, 오직 자신만이 이 작품이 지닌 ‘인간적인 사실성’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좋든 나쁘든 최후의 말을 하는 이는 바로 주석자”라며 머리말을 마친다. 출생 배경과 성장 과정, 아내 시빌과의 결혼, 딸 헤이즐의 자살, 심장 발작으로 잠시 엿본 사후 세계, 삶에 대한 고찰 등이 담겼다. “고독은 악마의 놀이터다. 나는 내 외로움과 비탄의 깊이를 설명할 수 없다”“시인에 의해 정화된 진실은 아무런 고통도,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아요. 진정한 예술은 거짓된 명예를 넘어서지요”“인생은 어둠 속에서 갈겨쓴 메시지다”옮긴이 김윤하씨는 “지난 반세기 넘게 축적된 ‘창백한 불꽃’ 비평은 그야말로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 해석의 각축장이었다”며 “이 작품을 둘러싼 해석 싸움에서 핵심이 되는 미스터리는 사실 너무 간단해서 반세기가 넘도록 결정적인 해답이 합의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믿기 어렵다”고 했다. “그 미스터리는 바로 누가 이 작품의 진짜 창작자(들)인가 하는 문제다. 처음 이 작품을 읽는 독자로선 이 문제가 뭐가 어려운지 어리둥절하게 느껴질 것이다. 두 개의 목소리가 확연히 구분되니까. 시인 존 셰이드가 시를 썼고, 주석자 찰스 킨보트가 머리말과 주석과 색인을 썼다는 것이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이 명백한 구분은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온 이래로 계속 의문이 붙여졌고, 다양한 논의의 불씨가 되었으며 그 불씨는 여전히 연소되지 않은 채 나보코프 독자들과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독해를 시도하도록 부추기고 있다”448쪽, 1만5000원,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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