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는 지난달 31일 88서울올림픽대회 개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노태우 제13대 대통령 취임식 등의 내용이 포함된 1602권(약 25만여쪽)의 1988년 외교문서를 해제했다.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 가능하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26차에 걸쳐 총 2만6600여권(약 370만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해 왔다. 北, 88올림픽 전방위 방해… 공동개최 시도 북한이 88서울올림픽의 남한 개최를 저지하고 남북 공동 개최를 시도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방해공작을 펼친 사실이 31일 공개된 1988년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주불(프랑스) 한국대사는 1984년 9월19일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문서에서 본인이 주불 소련대사와 한·소 회담을 가졌다며 구소련이 북한에서 서울 올림픽의 일부 경기가 열리도록 설득했다고 보고했다.주불 소련대사는 만찬에서 “서울 올림픽 개최에 대해 아직도 몇 나라가 이를 반대하고 있고 특히 북한이 맹렬한 반대와 방해공작을 하고 있어 12월에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IOC 회의에서 이러한 문제가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면 “한국이 올림픽 경기 중 2~3개 종목을 북한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아량을 베풂으로서 문제가 깨끗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주불 소련 대사는 “북한이 서울 올림픽에 대해 계속 맹렬히 반대하는 경우 올림픽에 참가하기가 어렵고, 중공(중국)도 마찬가지 입장”이라며 “한국이 KAL기 사건(1983년 소련에 의한 KAL기 여객기 격추사건) 복수를 할 것이라든가, 북한이 서울 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기 위해 파괴 행동 등을 행할 우려가 있다”고 언급했다.이에 주불 한국대사는 “칼기 사건에 대해서는 소련의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줄 것을 바라는 바이나, 올림픽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는 소련 대표단에 대한 복수 행위는 절대 없을 것이며 북한의 파괴 행동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주불 한국대사가 “북괴(북한)가 올림픽 경기 종목 일부 개최 안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소련 대사는 “환영할 것으로 보며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역설했다.주불 소련 대사는 이 문제가 조용히 외부에 알려짐 없이 한소 양국 대사간 비밀 접촉을 통해 진행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주불 한국대사는 북한에게 올림픽 경기 종목 일부 개최를 허용하자는 것은 소련이 서울 올림픽 참가의 명분과 구실을 찾는 동시에 북한에게 생색을 내고자하는 소련 측의 의도라고 평가했다. 또 소련 대사의 발언과 태도를 볼 때 북한이 이를 환영하고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고 보고했다.당시 우리 정부도 88올림픽이 한·소 관계 개선의 결정적 기회로 보고 소련과의 다각적 접촉을 확대하고 비정치적 분야에서 상호교류 등 실질관계를 심화시킴으로서 올림픽 대회에 소련의 유력인사들이 자연스럽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를 설정할 방침이었다. 이에 정부는 1984년 9월22일 오전 외무부에서 차관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고 소련 측의 제안을 논의했지만, 88올림픽 개최지 변경을 목적으로 한 책략이라며 거절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렸다.또 주홍콩 총영사가 1987년 4월10일 외교부 본부에 보낸 문건을 보면 1986년 10월 김일성 주석이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에게 88서울올림픽에 소련이 불참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완곡한 어조로 김 주석의 요청을 거부하고 88올림픽 경기에 참가 용의를 보이면서 한반도에서 긴장 조성보다는 완화가 더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문건에는 소련이 김일성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비공식적으로 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동독 등 동구권 국가들과 참가를 기정사실화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소련의 88서울올림픽 참가 결정 발표가 북한에 줄 쇼크를 줄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고 총영사는 평가했다.또 당시 북한 노동당은 고(故) 황장엽 전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명의로 1985년 6월 각국 공산당 중앙위에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지지 요청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서한에는 서울과 평양에서 경기를 똑같이 나눠 개최하고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며 남측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회주의 국가들은 LA올림픽 때와 같이 집단적으로 강력 대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북한은 1985년 7월30일 정무원 부총리 정준기 명의로 담화를 발표하고 올림픽 경기대회를 남북이 공동으로 개최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다음 날인 8월1일 정부는 이영호 체육부 장관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4년 전에 이미 결정한 사실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오만 불손한 태도이며 현대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무식한 집단임을 보여준 것”이라며 “남북 공동주최는 IOC 헌장의 정면 도전이자 시간적 기술적으로도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88올림픽 中선수단 판문점 경유 北 거부 중국이 88서울올림픽 참가 당시 선수단을 철도편으로 북한을 통해 보내려고 했으나 북한의 거부로 무산된 사실이 31일 공개된 1988년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1988년 8월7일 주파키스탄 대사 보고에 따르면 주파키스탄 중국 대사관 차석 샤오지옹추 참사관은 한국대사관 인사에게 “중국은 철도편으로 북한과 판문점을 경유해 올림픽 선수단을 서울에 보내려고 북한 측과 교섭했었으나 북측이 이를 단호하게 거부한 바 있었다”고 제보했다.참사관은 “북한의 올림픽 불참 결정은 어느 면에서 보나 잘못된 것으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는 처사이며, 한국 측 제의대로 몇 개 종목을 할애 받으면 북한이 충분히 체면 유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절대 권력을 가진 김일성에게 올바른 정책 건의를 하지 못하는 북한 체제의 경직성 때문에 올림픽에 대한 잘못된 결정을 했으며 남북한 간 교류와 협조의 획기적 호기를 놓치게 된 것으로 본다고 참사관은 평가했다.또한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1988년 6월 북한에 직접 메시지를 보내 88서울올림픽의 평화적 개최에 동조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확인됐다.같은 해 7월19일 주미대사는 미 국무부 관계관으로부터 입수한 정보라며 “미국 측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지난 6월 중공 지도자 덩샤오핑이 주북경 북한대사관을 통해 김일성에게 올림픽과 관련한 ‘퍼스널 메시지’(PERSONAL MESSAGE·친서)를 보냈다”고 외무부 장관에게 보고했다.덩샤오핑은 메시지에서 김일성에게 북한도 평화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한 세계적 노력에 동조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국은 7월 초까지 김일성으로부터 이 메시지에 대한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북한의 후견국이었던 중국은 북한이 올림픽 관련 제의를 할 경우 한국이 수용해야 한다고 북한 편을 드는 모습도 보였다.주미대사가 1988년 4월16일 본부에 보고한 ‘중공(중국)의 한반도 정책’이란 제목의 문서에 따르면 스테이플튼 로이 당시 국무부 동아태부차관보는 같은 달 12일 중국을 방문해 중국 외교부 국제문제연구소 타오빙웨이 아태주임을 면담했다.타오 주임은 이 자리에서 “북한이 올림픽 관련 어떤 제의를 할 경우, 한국이 이를 일단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그렇게 되면 노태우 대통령과 한국 국민은 외부 세계에 영웅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설득했다.이와 함께 중공(중국)은 올림픽에 대한 타협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북한이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데 우려하고 있으며 올림픽 문제가 타결되지 않는 상황에서라도 한국과 일본, 미국이 최소한 북한을 안심시키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타오 주임은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김일성은 죽기 전에 통일문제에 대해 어떤 진전을 보고 싶어 하고 있어 이러한 배경에서도 남북한 관계 진전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면서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한 관계에서 개방적 정책을 취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두환 정권 “대선 前 김현희 국내 이송” 안간힘 전두환 정권이 1987년 11월29일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을 대선에 정략적으로 활용하려 한 정황이 30년 전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당시 특사로 바레인에 파견된 박수길 외교부 차관보와 바레인 측 논의 내용을 담은 1987년 12월10일 전문을 보면, 전두환 정권이 KAL기 폭파 사건 범인 김현희(하치야 마유미)를 대선(1987년 12월16일) 전에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다.박 차관보는 바레인 측 실무자가 “KAL기 잔해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현희) 인도가 성급하다는 이야기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늦어도 (대선 전날인) 15일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12일까지는 바레인 측으로부터 인도 통보를 받아야 한다”고 보고했다.‘늦어도 15일까지 도착’이라고 시점을 못 박은 것은 대선(12월16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짐작케 한다. 막판에 이송 일정이 연기되자 박 차관보가 “커다란 충격”이라며 “너무나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서 바레인 측을 압박하기도 했다.또 바레인 측이 김현희의 신병 인도에 대한 결정을 미루자 미국이 개입했을 수 있다고 박 차관보가 의심하는 내용도 전문에 담겨 있다.박 차관보는 바레인 내무장관이 ‘한국이 대통령 선거로 인해 극히 바쁜 중에 방문해 조속히 귀국해야 할 것으로 이해한다’고 선거를 의식한 발언을 했다고 보고했다.그는 “마유미의 인도가 선거 이후로 되도록 미국이 바레인 측에 작용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니 마유미 인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측에 너무 소상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보고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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