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당시 훈민정음은 표음문자로써 창제됐다. 다시 말해 세종께서는 언문 국어의 일부 요소인 비(非)한자어=고유어=토박이말을 표현함과 아울러 표의문자인 한자의 약점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표음문자를 만들었지 표의문자를 창제하진 않았다. 표음문자란 음(音: 말소리)을 전문적으로 표기하는 문자로, 자형으로써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와는 구별된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과 종류가 다른 표음문자와 표의문자는 서로 분리돼 혼자서만 쓰일 때는 각기 장점과 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즉, 표음문자는 음을 표현하는 면에서는 강하지만 뜻을 표현하는 데는 약하며, 반대로 표의문자는 시각적으로 뜻을 표현하는 데는 강하지만 음을 표현하는 점에서는 약하다. 따라서 어리석은 이는 이 둘을 잘못된 시각 하에서 대립관계로 보고 평생 분쟁 조장 및 갈등하며 살겠지만, 현명한 이는 이 둘을 보완관계로 여기고 통합시킴으로써 잘 활용, 지복(至福)의 어문생활을 영위할 것이다.세종은 훈민정음 해례본 ‘어제훈민정음’ 편에선 다하지 못했던 ‘중국음’ 표기에 관한 규정을 훈민정음 언해본에 <사진>과 같이 추가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종대왕 당시 중국 명나라에는 우리나라의 치음(ㅈㅊㅉㅅㅆ)과는 다른, 치두음과 정치음이라는 두 종류의 치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북경어음을 표준음으로 삼은 보통화(普通話: 표준 중국어)에는 <사진>에서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도 발음하기 어려운 두 종류의 치음이 세종대왕 이래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다만, 오랜 세월이 흘렀고 국가가 몇 번 바뀐 탓에 그 명칭이 달라졌을 뿐이다. 치두음에 대해 훈민정음 언해본에서는 “이 소리는 우리나랏 소리에서 엷으니 혀끝이 웃닛머리에 다나니라(닿으니라)”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국어에서 혀끝을 윗니 안쪽에 댄 채 발음하는 ‘설치음(舌齒音)’ z, c, s가 바로 그것이다. 설치음은 ‘혀끝(舌尖: 설첨)’을 강조해 ‘설첨전음(舌尖前音)’이라고도 하니, 그 이름으로는 치음임을 알 수가 없다. 정치음에 대해서는 언해본 보다는 ‘사성통고(四聲通考)’에 보다 정확히 “整齒則卷舌點腭(정치즉권설점악)”이라고 설명돼 있다. 그 문구 안에 있는 말 그대로 현재 중국에선 ‘정치음’을 ‘권설음(卷舌音)’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로마자를 빌어 zh, ch, sh로 표기한다.중국어 설치음 z, c, s는 훈민정음으로는 ㅈ, ㅊ, ㅅ의 왼쪽 사선을 더 길게 해 표기하며 권설음 zh, ch, sh는 훈민정음으로는 ㅈ, ㅊ, ㅅ의 오른쪽 사선을 더 길게 해 표기했다. 이 훈민정음 글자들을 쓸 경우, 자형 상 중국의 설치음과 권설음은 ‘치음’의 종류임이 시각적·이치적으로 명확히 구별·인지된다. 그러나 중국어 z, c는 영어 z, c음과는 전혀 다른 음일뿐 아니라 자형도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