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세종대왕 즉위로부터 600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일제 35년을 겪었지만 4성7음이라는 전통적 어음 체계는 큰 변동이 없는 반면, 중국 북경어음은 명나라 때와 비교해 일부 변동이 있다.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됐다가 중화민국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돼온 역사가 우리보다 더 심한 굴곡이기 때문이다.중국 명나라 때 치음은 ‘치두음’과 ‘정치음’의 두 종류만 있었다. 그런데 북경어음을 표준으로 삼은 현대중국어 보통화에는 명나라 때와는 달리 세 종류의 치음이 존재한다. <사진1>에서처럼 지금 중국의 보통화에서는 ‘치두=설치음(z, c, s)’, ‘정치=권설음(zh, ch, sh)’ 외에 ‘설면음(j, q, x)’이라는 치음이 하나 더 있다. 용어 때문에 혼동될 수도 있겠지만, 중국어 설면음 j q x는 분명히 우리나라 말소리 ‘ㅈ ㅊ ㅅ’과 동일한 치음의 한 종류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게 됐을까? 역사를 들여다보자. 임진왜란(1592~1598) 때 대규모 군대를 조선에 파병, 국력이 소모된 탓에 한족의 명나라는 만주족의 청나라에 의해 1644년 멸망하고 만다. 같은 해 청나라의 순치(順治) 황제가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만주족의 치음=설면음이 기존 명나라의 치두음과 정치음에 추가∙융합된다. 그런데 만주족의 설면음은 조선의 치음(ㅈ ㅊ ㅅ)과 동일하다. 왜일까? <사진1>의 지도에서 보듯, 만주족 시조의 발상지는 백두산에서 정동쪽으로 24㎞ 떨어진 적봉산(赤峯山) 부근 ①로 표시된 ‘원지(圓池: 布勒瑚里泊)’로, 1908년 ‘대한제국지도’에선 함경북도에 속했다. 그처럼 만주족은 우리와는 지리·역사·언어 등의 면에서 매우 밀접한 관계이다. 고로 조선의 치음이기도 한 만주치음 j q x는 훈민정음 ㅈ ㅊ ㅅ으로 적으면 세 종류의 치음이 체계적으로 완전히 구별 표기된다. <사진1>에서 보듯, 북경은 명나라 이전 몽골족 원나라의 수도였다. 원나라는 중국 통일 후 전통 한자음을 존중했다. 비록 ‘北(북)’을 ‘부이’ 식으로 한자음 입성(종성이 ㄱㄷㅂ인 소리)을 변화시키긴 했지만 한자어 초성만큼은 송나라 이래의 36자모를 유지했다. 뒤를 이은 명나라 또한 치음의 경우 전통적인 치두와 정치음을 철저히 지켰다. 그 후 만주어의 치음이 북경어음에 유입될 때 기존 한자어의 초성을 변음 시키며 합류했는데 예를 들어보자. ‘西(서)’의 명나라 초성은 치두음 ‘   ’이지만, 현대중국음 ‘시’에선 ‘ㅅ(x)’로 변했다. ‘今(금)’은 초성이 ‘ㄱ’인데 현대중국어 ‘진’에선 ‘ㅈ(j)’로 변했다. ‘現(현)’의 정음은 초성이 ‘ㆅ’인데 현대중국어 ‘셴’에선 ‘ㅅ(x)’로 변했다. 우리말 방언 중 ‘길→질’, ‘형님→성님’처럼 ‘ㄱ→ㅈ, ㅎ→ㅅ’의 변음 속성을 만주어도 지니고 있어서 위와 같은 변화가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한편, 명나라 때 ‘반치음(ㅿ)’이었던 한자어들의 초성은 현대중국어에선 유럽의 영향을 받았는지 권설음 r로 변했다. 그러나 중국어 r은 영어 r과는 발음이 서로 다르다. 중국어 r의 경우 혀끝이 입천장에 살짝 닿지만 영어 r은 입천장에 닿지 않는 음이다. 그렇다면 이 둘을 어떻게 훈민정음의 규칙과 정신 그대로 일관되고 구별 가능하게 적을 수 있을까? 훈민정음 해례본 ‘합자해’ 편에선, “(언문국어) 순경음(ㅱㅸㆄ)의 예에 의거해 반설음 ‘ㄹ’ 아래에 후음 ‘ㅇ’을 연서하면 반설경음(半舌輕音)이 되는데 혀가 잠깐 윗잇몸에 붙는다”고 했다. 고로 중국어 권설음 r은 <사진2>에서처럼 반설경음으로 적으면 된다. 그리고 영어 r은 그와 반대로 ‘ㄹ’ 위에 ‘ㅇ’을 배치하면 ‘ㅇ’이 ‘목구멍’에서 나아가 ‘구멍→빈 공간’을 나타내므로 자형 상 혀가 입천장에 닿지 않고 떨어져 발음되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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