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 ‘중성해’ 부분에서 다룬 모음 글자는 훈민정음 28자 속에 포함된 ‘• ㅡㅣ, ㅗ ㅏ ㅓ ㅜ, ㅛ ㅑ ㅕ ㅠ’의 11개 외에, 두 글자를 합용한 ‘ㅘ ㆇ ㅝ ㆊ’ 4개, ‘ㅣ’와 합쳐진 1자 중성 ‘ㆎ ㅢ ㅚ ㅐ ㅟ ㅔ ㆉ ㅒ ㆌ ㅖ’ 10개, 2자 중성 ‘ㅙ ㅞ ㆈ ㆋ’ 4개, 도합 29개이다. 그런데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 모음자들이 세종 당시 우리말에 사용된 모음들만을 망라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독일 출신 귀화 한국학자인 베르너 사세(Werner Sasse) 교수의 조언은 새겨 들을 점이 있다. 그는 ‘한국은 민낯이 아름답다’라는 제하에 2015년 9월 28일 방영된 EBS 초대석에서 다음과 같이 충언했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한국문화를 소개할 때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글은 한국의 상징인데, 아주 훌륭한 알파벳이다. 많은 한국 분들이 한글로 어느 나라 말이든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 소리만 적을 수 있다. 독일 소리도 못하고, 영국 소리도 못하고, f 발음도 없고, 독일말로 ä ö ü도 없다. 한글은 다른 나라 말소리를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한국말을 분석 잘해가지고 한국말에 아주 알맞게 표현하는 ‘표한국음’ 문자이지 (‘표세계음’ 문자가) 아니다”일부 수긍 가는 말이나, 그가 훈민정음의 확장성에 대해 알았다면 위와는 좀 다른 말을 했을 것이다. 훈민정음 언해본에서는 중국 명나라의 말소리들을 새로운 자형들로써 표현하는 규정이 명시돼있으니, 결코 훈민정음을 ‘표한국음’ 문자라고만 제한할 수 없다. 더더군다나, 우리말에선 사용치 않는 모음에 대해 어떻게 표기할 것인지 해례본에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음을 알면 놀랄 것이다. 훈민정음의 모음 표현과 관련해, 미래의 확장까지 가능케 한 세종대왕의 철두철미한 안배가 있었다. <사진>에서와 같이 훈민정음 해례본 ‘합자해(合字解)’ 말미에는 우리말에선 쓰지 않는 두 개의 모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ㅡ起ㅣ聲, 於國語無用. 兒童之言, 邊野之語, 或有之, 當合二字而用, 如①②之類. 其先縱後橫, 與他不同”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번역하면 “•와 ㅡ가 ㅣ를 발생시키는 소리는 국어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어린아이의 말, 변경이나 국경선에 가까운 지방에는 그런 소리가 혹 있기도 하니 마땅히 두 글자를 합해 쓰되 ①②와 같은 따위이다. 그 세로를 먼저 쓰고 가로를 뒤에 쓰는 방식은 다른 글자들과 같지 않다”이다. 이 대목을 지침으로 삼는다면, 독일어 움라우트를 훈민정음에 맞게 독일식 ä ö ü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감사한 선견지명인가?움라우트(Umlaut)는 독일어로 ‘두르다(→변통)’를 뜻하는 um-과 ‘소리’를 나타내는 Laut의 합성어로, ‘소리의 변화’를 뜻한다. 우리말로는 ‘변모음(變母音)’이라고 하는데, ㅏ ㅓ ㅗ ㅜ 따위의 후설 모음이 다음 음절에 오는 ‘ㅣ’ 계열 모음의 영향을 받아 전설 모음 ㅐ ㅔ ㅚ, ㅟ 따위로 변하는 현상 또는 그런 소리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먹히다’가 ‘멕히다’로, ‘녹이다’가 ‘뇍이다’로, ‘죽인다’가 ‘쥑인다’로 변음 되는 따위이다.  독일어 움라우트 ä[ε:]의 소리는 앞서든 예 중 ‘멕히다’의 ‘에’ 모음과 거의 같다. 그래서 우리글로는 ‘ㅔ’로 표기하면 된다. 하지만 ö[ø:]와 ü[y:]는 우리말 ‘ㅚ’ 및 ‘ㅟ’와 발음 방식이 다르다. 우리말 ‘외’와 ‘위’는 발음 시 입모양이 동적으로 달라진다. 처음엔 ‘오’ 소리 낼 때처럼 입술이 오므려졌다가 ‘이’ 소리를 함께 내는 동안 입모양이 점점 더 펴진다. 그러나 독일어 ö와 ü는 ‘ㅗ’와 ‘ㅜ’처럼 오므린 입술 모양이 길게 끝까지 유지되는 정적인 발음이다. 고로 ‘o(ㅗ)’가 ‘e(ㆎ)’를 발생시키는 ö는 <사진>처럼 ‘ㅚ’ 보다 ‘ㅗ’의 가로선을 길게 해 그 우측 위에 ‘ㅣ’를 쓰고, ‘u(ㅜ)’가 ‘i (ㅣ)’를 발생시키는 ü는 ‘ㅜ’ 오른쪽 위에 ‘ㅣ’를 쓰면 훈민정음 방식의 표현이 될 것이다. 현대중국어 병음 ü의 표기 또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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