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은 ‘실천을 꿈꾼 도덕군자’라는 주제로 인동장씨 남산파의 문중 특별전을 개최한다.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이번 특별전에는 조선 중기 대학자 장현광(張顯光 1554~1637), 조선예학을 크게 발전시킨 장복추(張福樞 1815~1900), 일제강점기 파리장서 초안을 작성한 장석영(張錫英 1851~1926) 등 인동장씨 남산파 관련 자료 100여건이 전시된다.16세기 조선 성리학계에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율곡 이이가 있다면 17세기에는 여헌 장현광을 꼽는다.그는 성리학자이면서 과학사상가로 18세에 우주원리와 인간의 관계를 밝힌 ‘우주요괄첩(宇宙要括帖)’을 저술할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다.그의 저서 중 ‘역학도설(易學圖說)’은 그를 조선 역학의 1인자로 만들어준 역작이다.‘성리설(性理說)’은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장현광은 평소 ‘스스로의 인격완성을 기반으로 한 도덕적 실천’을 강조했다.실제로 그는 1636년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군현에 통문을 보내 의병을 일으키게 하고 군량미와 음식, 군수 물품을 모아 보냈다.하지만 이듬해 2월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면서 “하늘도 땅도 없어졌으니 어디로 가면 좋으랴”라며 통곡한 후 동해안 입암산으로 들어가 반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장현광의 사상은 인동장씨 남산파 후손들에게 계승돼 가학(家學) 전통으로 이어졌다.예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미헌 장복추는 생활과 직결되는 가례, 가훈, 인륜 등과 같은 실천예학을 중시했다.이번 전시에서는 장복추의 ‘가례보의(家禮補疑)’가 소개된다.이 책은 ‘주자가례’의 상례에서는 다루지 않은 실제 의례과정에서 발생하는 변례(變禮)를 보완해둔 것이다.일제강점기 때 회당 장석영은 1919년 프랑스 파리만국평화회의에 보낸 독립청원서인 장서의 초안을 작성했다.그 일로 성주경찰서에서 심문을 받고 대구교도소로 이송돼 징역 2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그는 당시의 일을 ‘흑산일록(黑山日錄)’이라는 옥중일기에 남겼는데 이 책에 파리장서 초안이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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