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74)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데뷔 초창기에 연극 무대에 자주 올랐다.한양대 재학시절인 1966년 연극배우와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특히 1970년대 초반 임영웅 예술감독이 이끄는 극단 산울림 무대 위에 주로 섰다.1971년 6월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꽃 피는 체리’(연출 임영웅), 1971년 10월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연출 임영웅), 1972년 3월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부정병동’(연출 임영웅) 등이다.하지만 1973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 미국에서 생활하며 연기 활동을 멈췄다. 그녀의 연극 출연도 자연스레 중단됐다. 1984년 MBC 단막극 ‘베스트셀러-고깔’을 통해 연기에 복귀했으나, 무대에 다시 오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1990년 연극 복귀작 역시 임영웅 연출의 연극 ‘위기의 여자’였다. 같은 해 5월과 12월 각각 소극장 산울림 무대에 올랐다. 극단 산울림의 창단 5주년 기념공연의 하나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작품이 원작이었다.안정된 중산층 가정의 중년 여인이 남편과 갈등을 겪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서 자아를 찾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묘하게 당시 윤여정의 실제 삶과 맞물리면서 주목 받았고, 그녀의 연기 역시 호평을 들었다.‘유리동물원’은 ‘평창 동계올림픽’ 총감독을 지낸 송승환 예술총감독이 이끄는 PMC프로덕션이 창립해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었다.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1944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1930년대 공황기가 배경이다. 냉혹한 현실에 몰락해가는 가족의 비극을 그린다.자녀들에게 자신의 환상을 강요하는 어머니 ‘아만다’와 시인을 꿈꾸지만 현실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톰’, 주로 집에서 유리동물과 축음기를 관리하며 시간을 보내는 ‘로라’가 호흡을 맞췄다. 윤여정은 아만다를 맡아 톰 역의 송승환, 로라 역의 김호정과 호흡을 맞췄다.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 기자 출신 연극평론가인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는 “당시 TV와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연극에 출연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면서 “연극이 일종의 재충전 무대였다”고 전했다.당시 ‘유리동물원’의 무대 디자인을 맡았던 이태섭 무대 미술가는 “윤여정 배우님께서 미국의 사실주의 작품을 아주 디테일하고 훌륭하게 잘 표현해주셔서 화제가 됐던 작품”이라면서 “송승환 배우님과 윤여정 배우님이 섬세하게 표현해주셔서제 무대가 돋보일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유리동물원’의 기획자였던 김종헌 쇼틱씨어터컴퍼니 대표 겸 성신여대 융합문화예술대학 교수는 “윤여정 선생님이 본인은 무대를 잘 알지 못한다면서 항상 겸손하게 이야기를 하셨는데, 무대 위에서도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셨고, 덕분에 작품이 빛났어요. 개인적 욕심이 있다면 무대에 다시 서시는 날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윤여정은 송승환 총예술감독이 직접 섭외했다. 1996년 KBS 2TV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함께 출연한 것을 계기로, 제안을 했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사랑·동정을 유발하는 아만다는 당시 ‘목욕탕집 남자들’의 둘째 며느리 캐릭터와 통하는 지점이 많았다.송승환 감독은 “이미 번역이 돼 있었지만 선배님께서 따로 원작을 직접 읽고, 연구를 하실 정도로 무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셨다”면서 “몇년 전부터 영화를 주로 출연하셔서 제가 ‘무비 스타’가 되셨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월드 무비스타’가 되셨다. 정말로 축하드릴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