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식(사진·70) 대주교가 한국인 최초로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것과 관련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유 대주교는 지난 12일 천주교대전교구 홈페이지에 올린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에게 전하는 서한’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장관 제안을 받았을 당시 “저는 망치로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한 자세였다”고 밝혔다. 이날 서한에 따르면, 그는 지난 4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기 위해 집무실에 갔다. 그 자리에서 유 대주교는 교황에게 ‘백신나눔운동’과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에 관해 설명을 드렸다. 교황의 북한 방문에 대해서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유 대주교는 “교황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직 저만을 위해 계시듯이 저를 똑바로 바라보시며, 대화의 내용에 따라 웃으시고, 고개를 끄덕이시고 슬픈 모습을 보이시며 경청하셨다”고 기억했다. 유 대주교의 말이 끝나자 교황은 “내가 주교님을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하려고 하니, 이곳 로마에 와서 나와 함께 살면서 교황청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을 하면 좋겠다”라고 그에게 말했다. 유 대주교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교황님, 저는 부족하다. 저는 여러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많은 것을 모르는 아시아의 작은 교구의 주교”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교황은 “주교님은 항상 사제들과 가까이 지내고 있으며 주교들 사이에 친교를 가져오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교황청은 주교님께서 지니신 특유의 미소와 함께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친교의 사람이 필요하다. 또한 교황청에는 아프리카 출신 장관은 두 분인데 아시아 출신 장관은 한 분뿐이다. 주교님은 전 세계 보편교회에 매우 중요한 아시아 대륙 출신”이라고 강조했다. 유 대주교는 당일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고 했다. “교황님 알현뿐만 아니라 우리 교구의 일과 한국 가톨릭교회를 위해 교황청 여러 부서를 방문하는 계획들을 실행하면서도 제 마음은 오직 교황님께 드릴 답을 생각하느라 혼란스럽고 복잡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계획된 일을 하면서 기도하고 숙고하고 성 베드로 광장을 걷고 또 걸으며 성령께, 성모님께, 우리의 장한 순교자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고 했다. 시간이 가면서 “지금까지 나의 사제생활에서 무엇이 되겠다고 찾은 적이 없고, 교회가 나에게 새로운 임무를 줄 때 거부한 적도 없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이 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에 일어나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했다”고 전했다. 결국 그는 교황께 “예”라는 대답을 드렸다. 이후 유 대주교는 무릎을 꿇고 교황님의 강복을 받았다. 교황은 “주교님은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내가 성직자성 장관 임명을 발표할 때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꼭 비밀을 지키며 교구와 한국에서 모든 일을 잘 정리한 후에 로마에서 기쁘게 만나자”고 전달했다. 유 대주교는 “교황님의 모습은 매우 기쁘고 흐뭇하신 모습이셨다. 교황님께서는 승강기 앞까지 오셔서 버튼을 눌러주신 후 제가 승강기에 오르고 문이 닫힐 때까지 눈을 마주치며 배웅해 주셨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유 대주교는 “저 자신이 성숙한 사제, 친교의 사제, 성 김대건 신부님과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을 닮은 사제로 살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장한 순교자들의 후예로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님 곁에서 보편교회를 위해 열정적으로 봉사하고, 때가 되면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킨’(2티모 4,7) 대전 교구민의 모습으로 여러분 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앞서 유 주교가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됐다고 교황청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밝혔다. 한국인 성직자가 교황청의 차관보 이상 고위직에 임명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교황청 성직자성은 주교들과 주교회의의 권한을 존중하는 한에서 재속 성직자인 사제들과 부제들의 사목 전반을 심의한다. 이와 관련 주교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는 부서다.유 주교는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임명과 동시에 대주교 칭호를 부여받았다. 일반적으로 교황청 행정기구인 9개 성(省) 장관은 추기경 직책으로 분류됨에 따라 유 대주교도 향후 추기경에 서임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