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예능물 제작비 100억원 시대가 열렸다.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등 국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공격적인 투자로 예능물 제작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OTT 플랫폼 특성상 표현 범위가 넓어졌을 뿐 아니라, 탄탄한 제작 지원으로 콘텐츠 완성도도 높아졌다. 3차원 가상세계인 메타버스를 활용한 예능물 등으로 드라마·영화 못지 않은 볼거리를 제공,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OTT를 타고 K-드라마에 이어 K-예능도 세계로 뻗어갈까.
◆K-예능 100억 시대
쿠팡은 2020년 말 1000억원을 투자해 쿠팡플레이를 선보였다. 4년 만에 부활한 예능물 `SNL 코리아` 시즌1 제작비는 총 120억원으로 알려졌다. 총 10부작으로 회당 12억원을 투입한 셈이다. CJ ENM 계열 케이블채널 tvN에서 SNL 코리아 시즌1~9(2011~2017) 방송했을 때 제작비의 10~12배에 달했다. 첫 회 영화배우 이병헌을 시작으로 하지원, 조정석, 윤계상, 조진웅 등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비결이다. 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쿠팡플레이는 지난해 2월 월간 활성 이용자수(MAU)가 65만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9월 SNL 코리아를 선보인 후 200만명을 돌파했다. 한류스타 김수현 주연 드라마 `어느날`과 `SNL코리아` 시즌2를 연이어 공개, 지난달 MAU는 300만명을 넘어섰다.
기존 예능물은 드라마 제작비의 약 1/10 수준이었다. CJ ENM이 대기업 자본력을 바탕으로 tvN 등에서 톱스타를 내세운 예능물을 쏟아내면서 제작 규모가 점점 커졌다. 수억원대 톱스타 출연료 부담에 간접광고(PPL)를 남발할 수밖에 없었다. 2016년 넷플릭스가 국내에 상륙하면서 제작 환경이 크게 개선됐다. 저작권을 모두 가져가는 대신 높은 제작비를 지원했다. 제작 기간이 길어진 만큼 편집·후반작업 등에 공을 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완성도도 높아졌다. 넷플릭스 연애 예능물 `솔로지옥`을 연출한 JTBC 김재원·김나현 PD는 "꿈에 가까운 프로젝트를 했다" "PD로서 호사스러운 경험을 했다"고 할 정도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요즘 영화는 제작비 100억원이 넘으면 투자가 잘 안 들어온다"며 "코로나19로 영화 산업이 타격을 입으면서 드라마·예능으로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예능은 드라마·영화보다 해외 시청자들의 진입장벽이 높지만, OTT가 탄탄한 제작비를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 벽을 깨고 있다. 솔로지옥이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OTT 예능물 투자는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OTT, 지상파·종편과 협업 활발
넷플릭스와 지상파·종합편성채널 간 협업도 활발하다. 지난해 MBC TV 예능물 `무한도전`(2006~2018) `놀면 뭐하니?`(2019~) 등을 연출한 김태호 PD와 손잡고 `먹보와 털보`를 선보였다. 회당 제작비는 6억원으로 추정된다. 총 10부작, 약 60억원을 쏟아부었다. 가수 겸 배우 비(정지훈)와 MC 노홍철은 BMW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누비고, 드론 등 다양한 카메라를 활용해 영상미도 더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비와 노홍철의 메타버스 캐릭터도 색다른 재미를 줬다.
JTBC와 협업한 솔로지옥 역시 기존 지상파·종편 예능물보다 높은 수준 제작비가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커플이 돼야만 나갈 수 있는 외딴 섬, `지옥도`에서 펼쳐지는 데이팅 리얼리티쇼다. 인천 옹진군의 작은 섬 사승봉도에 지옥도 세트를 짓고, 커플이 되면 떠나는 천국도는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 마련해 기존 연애 예능물보다 볼거리도 화려했다. 김나현 PD는 "천국도인 파라디스시티 방 가격은 1박에 1000만원~2000만원 사이"라며 "PPL 없어 제작비로 결제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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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예능물 신선
넷플릭스 `신세계로부터`는 메타버스 예능물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유토피아에서 생존 미션을 그려 예능판 `오징어게임`으로 불렸다. 경남 거제 외도에 가수 이승기를 비롯해 그룹 `엑소` 카이, `젝스키스` 은지원, `슈퍼주니어` 김희철, 탤런트 조보아, 개그우먼 박나래 등 총 6명 각자 로망으로 채운 집을 지었다. 조효진 PD는 "예능도 발전하려면 가상공간을 연결해 만들어야 한다"며 "세트나 소품, CG 등에서 `얼마나 디테일하게 구현할 수 있느냐`를 고민했다. 넷플릭스와 함께해 이전보다 여건이 개선됐다. 영화처럼 구현할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가상공간을 거부감 없이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종편도 메타버스 예능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기존 타깃 시청층인 40~60대에서 벗어나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를 사로잡기 위한 전략이다. MBN은 올해 상반기 메타버스 음악 예능물 `아바타 싱어`를 선보일 계획이다. 국내 최정상 가수를 3D 아바타 캐릭터로 창조한다. 지적재산권(IP)을 기반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대체불가능토큰(NFT)을 연결, 메타버스 생태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TV조선 `부캐전성시대`는 단순히 예능물만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출연자 총 32명의 부캐릭터(부캐)를 활용한 `버추얼 휴먼`(가상인간)도 제작 중이다.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광판에 마미손 버추얼 아바타 영상을 공개했다. 부캐전성시대는 제작비 약 40억원을 투입했으며, 버추얼 휴먼까지 만들면 7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작자 최용호 갤럭시코퍼레이션 대표는 "국내 예능물 100억원 시대가 왔다. 앞으로 메타버스 예능물이 쏟아질 텐데, 어느 정도 녹여 내느냐 차이일 것"이라며 "요즘 한국적인 게 세계화되고 있다. 예능 세계관을 영화, 뮤지컬 등으로 확장해 세계를 공략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