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을 위한 ‘표층 처분시설’이 경주에서 첫 삽을 떴다. 2014년 1단계 동굴처분시설 완성 뒤 약 8년 만이다. 신경주역에서 약 1시간 거리, 문무대왕릉 앞 바다 인근에 있는 2단계 표층처분시설 현장은 지난 26일 지하점검로와 배수 계통 관련 지반 공사가 한창이었다. 앞서 2단계 시설은 지난 2015년 건설 인·허가 신청 뒤 2019년까지 건설하려했으나, 2016년 경주 지진 발생에 따라 절차가 미뤄졌다. 이후 리히터 규모 7.0(지반가속도 0.3g)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5중 다중차단구조로 내진성능을 강화해 지난달 7일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건설허가를 받았다. 2단계 표층처분시설은 국내 최초 저준위 이하 방폐물 처분시설이다. 면적 6만7490m²에 12만5000드럼(200ℓ 기준)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어진다. 원전 작업자의 의류·장갑 등 저준위 방폐물을 300년 동안 보관 하게 된다. 2단계 시설에는 가로 20m, 세로 20m, 높이 10.9m의 농구장 1개와 비슷한 크기의 처분고 20개 건설된다. 처분고 아래로는 지하점검로가 들어선다. 처분고 1개에는 6250개의 드럼(200ℓ 기준)이 들어가게 되며, 틈이나 공간을 메울 때 사용하는 자재인 `무수 그라우트`를 사용해 완전하게 밀봉한다. 전체 처분고 위에는 산비탈 모양의 처분덮개가 올라가 저장용기-그라우트-처분고-덮개-암반의 5중 다중차단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2단계 시설이 완공되면 우리나라는 세계 6번째로 동굴처분 기술과 표층처분 기술을 모두 확보하게 된다. 완공은 2025년 예정이며 2045년까지 20년간 저준위·극저준위 방폐물을 처분하게 된다. 2단계 시설 착공 현장 방문 전에는 2015년부터 운영 중인 1단계 동굴처분시설을 먼저 찾았다. 지상 30m 지점에서 1.4㎞ 길이의 터널 경사로를 차량으로 통과해 지하 95m 지점에 들어서자 1단계 동굴처분시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수면으로부터 지하 80~130m 깊이에 50m 높이로 지어지는 지하 사일로에 콘크리트 처분용기(200ℓ 드럼 16개 처분)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사일로 앞에서 계측기를 해본 결과 방사선 선량은 ‘0’으로 나왔다. 1개 사일로에 1만6500 드럼을 처분할 수 있으며, 이 같은 사일로가 지하에 6개가 조성돼 있다. 사일로가 가득 차면 자갈 등으로 채운 뒤 콘크리트로 영구 봉인하게 된다. 1단계 동굴처분시설은 8월 26일 기준 2만5578드럼(200ℓ 기준)을 처분했다. 10만 드럼(3만 드럼은 중준위 대상) 규모로 지어진 1단계 시설의 약 25.5%에 달하는 양이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2단계 처분시설 착공식 뒤 기자들과 만나 “표층처분시설은 원전 내에 비치된 9만톤 정도의 저준위 폐기물을 거의 다 수용할 정도로 큰 규모로 착공하는 데 의의가 있다”며 “내진설비를 갖춰 기술적으로 상당히 뛰어나다”고 했다.      ▣갈 길 먼 고준위 처분시설…“경수로 건식저장시설 시급” 경주 방폐장에 이어 인근 월성 원자력 본부를 방문했다. 이곳에는 국내 유일 가압중수로를 사용하는 월성 1·2·3·4호기와 함께 경수로를 사용하는 신월성 1·2호기 등이 자리하고 있다. 월성 1호기는 2018년 폐쇄가 결정됐다.  월성 1·2·3·4호기에는 건식저장 시설인 캐니스터(건식 저장시설)와 맥스터(조밀건식 저장시설)가 자리 잡고 있다. 중수로에서 나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를 물로 냉각하는 습식 저장 후 6년이 지나면 건식 저장시설에서 공기로 식히게 된다. 월성 원전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니 월성 원전 옆으로 기다란 원통 사일로 형태의 하얀색 캐니스터가 줄을 이어 서 있었다. 1992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캐니스터는 철근 콘크리트 두께만 0.8m로, 1개 사일로에는 사용 후 핵연료 60다발이 들어가는 바스켓 9개가 저장되며, 이러한 사일로가 300개(16만2000다발)가 있다. 캐니스터 부지 옆으로는 길이 21.9m, 폭 12.9m, 높이 7.6m의 사각형의 콘크리트 건물처럼 보이는 맥스터 14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상부 슬라브 1.08m, 벽 0.98m 두께의 맥스터 1개에는 40개 실린더가 설치되며 1개 실린더에 사용 후 핵연료 600다발이 들어간다. 현재 14기 맥스터에 모두 33만6000다발의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할 수 있으며, 국내 영구처분시설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원전 내에 보관된다. 2016년 4월부터 운영된 맥스터 1차 시설(7개)이 2022년 3월 포화가 다가오면서 우려가 나오기도 했지만, 올해 3월 아슬아슬하게 7기 증설이 완공되면서 한숨을 돌리게 됐다. 환경단체의 우려도 있었지만 월성원전 맥스터는 주민 81.4%의 찬성을 얻어 증설됐다. 이날 전망대에 설치된 현황판에 월성 원전 건식저장시설 방사선량은 시간당 0.096 마이크로시버트(uSv/h)로 서울(0.117uSv/h)과 인천 (0.137uSv/h)의 대기에 있는 방사선량보다 적었다. 이어 신월성 원전의 사용 후 연료 저장조를 방문했다. 이곳에는 경수로인 신월성 원전에서 다 타고 나온 사용 후 핵연료가 물이 담긴 거대한 수조(습식저장조)에 보관돼 있었다. 신월성 원전은 177다발의 연료가 장전돼 4년6개월 정도 사용되며, 1년6개월마다 계획예방정비를 받으면서 다 태워진 연료가 꺼내져 이곳 습식저장조로 이동하게 된다. 현재 경수로원전 가동 후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는 모두 습식저장조에 보관되고 있다. 문제는 습식저장조 포화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날 방문한 신한울의 경우 1호기 포화율은 30.9%, 2호기는 25.2%로 2045년께 포화가 예상돼 아직 여유가 있지만, 고리와 한빛 원전의 경우 2031~2032년에 각각 포화 상태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고준위 방폐물 영구처분시설 건설에 최소 37년은 걸리는 만큼 그사이에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한수원 관계자는 “현재 건식저장시설은 중수로인 월성원전만 운용되고 있다”며 “영구처분시설이 40년 이상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경수로용 건식저장시설 문제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경수로 원전에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규제기관 허가부터 설계, 시공 등에 대략 7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시작해도 2029년에야 완공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주민 동의 절차에서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이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고준위 방폐물 관리와 관련해 “올해부터가 처분하는 `원년`이 되겠다”며 “이달 국회에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을 발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특별법은 총리실 내 전담 조직을 만들고, 처분장 위치 선정이나 절차, 주민 협의 절차, 주변 지역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다 담게 된다”며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절차를 걸쳐서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10가지 이상 기술을 선정해서 연구개발(R&D) 자금을 올해부터 투입하기 시작해서 적당한 시기에 기술 확보하겠다”며 “제도적 인프라를 갖추고 기술을 갖추면 정해진 일정 내에 고준위 방폐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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