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과 김상덕 선생 기념사업회는 2·8독립선언 104주년 기념식을 대가야문화누리회관에서 8일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이남철 고령군수를 비롯해 김명국 고령군의회 의장과 의원과 노성환 도의의원, 기세원 고령군 교육장, 선생을 기리는 군민들이 참석했다. 특히 몽양 여운형 선생의 종손자인 여인성님과 독립지사의 노재섭 선생의 자 광복회 대구지회장 노수문님이 참석해 선생을 추모했다. 김상덕 기념사업은 2017년에 준비모임이 결성되고 2019년에 선생기념사업회과 민주평통이 합동으로 2·8독립선언 100주년 행사를 가지게 됐다. 김상덕 선생은 1891년 고령군 대가야읍 저전리에서 출생했다. 1919년 도쿄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 실행위원으로 독립선언식을 주도하다 투옥돼 징역을 살다 1920년 석방됐다. 그해 4월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돼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한국대표단으로 참가, 상하이 국민대표회의에 개조파 일원으로 참가, 상해청년동맹회에서 활약했다. 1930년에는 만주에서 한국독립당에 참가해 무장투쟁을 지도하고, 난징에서는 신익희, 윤기섭 등과 함께 신한국당 상무위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1940년에는 한독당에 참여해 김규식 선생을 보좌했으며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에 선임 되기도했다. 해방을 맞아 김구 주석과 함께 임시정부요인 1진으로 귀국해 김규식, 이승만과 함께 비상국민회의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1948에는 5·10 총선에서 고향인 고령에서 출마해 제헌의원 헌법기초위원으로 제헌헌법을 제정하는 데 공헌했으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선생은 6·25전쟁으로 납북돼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김상덕 선생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월북했다는 오해로 독립운동가의 지위에서 이탈되기도 했다. 그러나 남북교류시절 북한의 납북자 묘역에 안치된 선생의 묘가 확인돼 1990년 비로소 건국훈장 독립장을 뒤늦게 수훈하기도 했다. 이남철 고령군수는 “김상덕 선생 업적이 많이 가려져있다. 지금부터라도 숭고한 뜻이 잘 드러나도록 함께 하겠다. 또한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잘 받들어 대한민국이 올바로 설 수 있도록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정석원 김상덕선생기념사업회장은 “고령군에 56분의 독립운동과 관련한 유공자들이 계신다”고 전제하고 “지역의 독립운동가와 김상덕선생을 통해 애국애족의 정신을 계승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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