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영웅 청춘 소방관이 국민의 곁을 떠났다. 문경 공장 화재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순직한 소방관 2명의 영결식이 3일 경북도청에서 경북도청장(葬)으로 엄수됐다. 고(故) 김수광 소방장(27)과 故 박수훈 소방교(35)를 실은 운구 차량이 이날 오전 10시 경북도청 동락관에 도착하자 동료 소방관 700여명이 거수경례로 맞았다. 유가족들은 영결식장에 운구행렬이 들어서자 두 소방관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영결식엔 유족과 친지, 소방청장과 동료 소방관,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 이철우 경북지사, 도의원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통곡의 바다된 영결식 두 소방관과 한 팀에서 근무했던 윤인규 소방사는 영결식 조사에서 "화재 당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화재 출동 벨소리가 울리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현장으로 뛰어갔던 우리 두 반장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물먹였다. 그는 "반장님이 그러했듯이 내일부터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달려갈 것"이라고 했다. 김 소방장의 20년 지기인 전남 광양소방서 소속 김동현 소방관은 "소방관이라는 꿈을 꾸며 어둡고 좁은 독서실에서 함께 공부했던 시간이 생각난다. 먼저 합격한 네가 시험 준비 중인 나에게 미안해하면서 행복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슬퍼햇다.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자`던 너의 말이 오늘 더욱더 기억난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음 생에는 희생하며 사는 인생보단 너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너의 행복, 가족, 친구들을 생각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관섭 비서실장이 대독한 조전에서 "두 소방관은 누구보다 용감하고 헌식적인 소방관이자 대한민국의 소중한 청년이었다"며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두 소방관을 화마 속에서 잃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고인들의 희생과 헌신을 국가는 절대 잊지 않겠다"고 했다. 장례위원장인 이철우 경북지사는 "오늘 우리는 경북도의 두 청춘을 떠나보낸다"며 "구해내지 못해 미안하고 이렇게 떠나보낼 수 밖에 없어서 또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소방관의 희생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면서 "경북도는 고귀한 인생이 헛되지 않도록 현장 근무 환경을 더욱 살피고 어려운 상황은 확실하게 개선하겠다"고 덧붙였다.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하는 관을 바라보며 김 소방장 어머니는 "수광아 보고 싶다"고 통곡했고, 부친도 아내를 부축하며 함께 울었다. 이날 열린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1계급 특진, 윤석열 대통령 조전 낭독, 조사, 헌화와 분향, 조총 발사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두 소방관은 영결식 후 문경 예송원에서 화장 절차를 마친 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앞서 지난달 31일 오후 7시47분께 문경시 신기동 육가공업체 공장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당시 인명 검색과 구조에 나선 김수광 소방장과 박수훈 소방교는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이 치솟는 공장 내부로 들어갔다가 급속히 번진 불길에 휩싸여 고립됐다 1일 새벽 끝내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가지마라 내 새끼…오열 동료들이 문경장례식장에서 두 소방관의 관을 들고 운구차량으로 향하자 두 어머니는 관 위로 쓰러져 "못 보낸다, 가지 마라 내 새끼"라고 오열했다. 두 소방관은 경북도청 동락관에 열리는 영결식장에 가기 전 생전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문경소방서 119안전센터에 들렀다.  두 부모는 아들이 착용했던 근무복을 가슴에 안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쓰러졌다. 김 소방관의 유가족은 휴식공간으로 활용했던 구조구급 대기실에 들러 "수광이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겼다고…"라고 눈물을 흘리며 방바닥에 손길을 대며 그의 온기를 느끼려고 했다. 문경소방서를 떠나기 전 한 소방관은 유가족에게 문경소방서에 걸려 있던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를 읊었다. 1958년 미국 소방관 스모키 린이 쓴 이 시는 목숨 걸고 투입된 화재 진압 과정에서 3명의 아이를 미처 구하지 못했고 그 죄책감에 쓴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시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게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들을 돌보아주소서`라고 적혀 있다. 마지막 문단에 있는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들을 돌보아주소서`라는 문구에 두 소방관의 유가족은 "보고싶다", "가지 마라"라고 하며 쓰러졌다. 영결식 후 두 소방관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고인들의 고향인 경북 구미·상주소방서와 문경소방서, 경북도청 동락관 등 4곳에 설치된 분향소는 오는 5일까지 운영된다. 소방청은 고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오는 7일까지 애도 기간으로 정하고 이날까지 조기를 게양한다. ▣분향소 울린 `대답 없는 호명` 장례식장 201호와 301호에 각각 마련된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고(故) 김수광 소방장(27)과 박수훈 소방교(35)의 빈소는 여전히 침묵만 흘렀다. 전날 빈소를 찾았던 남화영 소방청장은 이날 오후 1시쯤에야 떠났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김수광 소방장 모친의 지인들은 황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채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수광이가 정말 성실하고 착했다. 부모에게도 정말 잘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소방장의 매형은 "저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토록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처남은 119 구급대원을 천직으로 알고 체력훈련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제 주변에서 일어났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자식 잃은 어른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수훈 소방교의 동료라고 밝힌 30대 소방관은 "고된 업무를 하면서도 언제나 밝고 유쾌한 에너지를 준 친구"라며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그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 뿐"이라고 했다.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문경소방서에도 소방 동료들과 일반 시민들이 찾아 고인들을 애도했다. 환하게 웃는 고인들의 영정을 한참 바라보던 문경퇴직소방관동우회 한 회원은 "저도 현직에 있을 때 화재 현장에서 다친 적이 있다"며 "불이 나면 다른 사람들은 다 대피하기 바쁜데 소방관들은 자기 책임과 의무가 있어 늘 사지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살아서 나와야 했는데 자기 목숨을 바친 순직이 돼 버려서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된 만큼 소방관 처우와 제도적 안전장치 등이 점차적으로 나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창배 문경퇴직소방관동우회장은 "아깝게 꽃다운 목숨을 잃은 후배들의 사고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너무나 먹먹했다"며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더 안전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뒷받침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0년 물류창고 폭발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사망자 38명이 나온 경기 이천지역에서 근무하는 소방관들도 합동분향소를 찾아 고인들 영정에 헌화하고 애도했다. 임황근 이천소방서 소방행정과장 등 4명은 후배 동료들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임 과장은 "소방대원들이 화재나 재난 현장을 대응하고 인명을 구조하는 사명감과 책무 차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될 비극"이라며 "근무지는 다르지만 후배들의 희생을 외면할 수 없어 빈소를 찾았다"고 말했다. ▣순직 소방관 애도물결  "자기 몸도 생각해서 살아가시기 바라겠습니다." 소방관 2명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한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사고가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난 2일. 고(故) 김수광(27) 소방장과 박수훈(35) 소방교의 빈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오후 2시 기준 방명록에 적힌 조문객은 500여명에 이른다. 다만 유가족 측에서 고인을 조용히 보내드리길 원한다는 입장을 전해 장례식장 앞 취재진들은 차분한 모습으로 대기했다. 검은 복장을 한 조문객들은 애통한 표정으로 수없이 늘어선 근조화환을 지나 빈소로 들어섰다. 경북소방 119특수대응단 대원 30여명이 2층에 차려진 김수광 소방장의 빈소에서 절을 올리자 "아이고 아이고"하는 곡소리와 함께 주변은 삽시간에 눈물바다가 됐다. 김 소방장의 아버지는 "남들보다 자기 몸도 생각해서 살아가시기 바라겠습니다"라며 소방대원들을 격려했다. 어머니는 "우리 수광이 죽음이 헛되지 않게 사고 현장에서 꼭 살아서 열심히 살아가주세요"라며 울부짖었다. 순직 대원의 지인들은 두 대원 모두 밝고 긍정적이었다고 회상했다. 박 소방교와 훈련 동기라는 한 소방관은 "힘든 훈련을 할 때도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주던 형이었다"고 말했다. 김 소방장과 직장 동료였던 한 소방관은 "항상 밝고 고향에 가면 술 한잔 하자고 먼저 찾아주는 좋은 동생이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박수훈 소방교 열정과 선한 영향력 주는 사람 문경시 육가공업체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고(故) 박수훈(35) 소방교의 지인들은 2일 "열정이 넘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라며 그를 회상했다. 고향이 상주인 박 소방교는 특전사 중사 출신이다. 태권도 지도자로서 양식조리기능사 자격증도 땄던 그는 2021년 8월 그토록 바라던 소방 공무원에 최종 합격해 이듬해 구조 분야에 임용됐다. 박 소방교에게 태권도를 배웠다는 이예리(23·여)씨는 이날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수훈 코치는 정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다.  아무리 돌이켜봐도 내 인생의 스승으로 여길 만큼 정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고 전했다. 첫인상에 대해서는 "열정이 엄청 강한 사람"이라며 "2016년도쯤 태권도장에 코치로 왔었는데 유아부부터 고등부까지 훈련 스케줄을 다 짜왔다. 대다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기억했다. 이어 "코치님은 책임감이 강한 분이었다. 제자의 일을 본인 일처럼 도와주고 해결해 주려던 분"이라며 "내가 방황하고 힘들었을 때 수훈 코치 덕에 정신 차리고 내 꿈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이 운동했던 건 2년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이후로도 계속 연락하며 지냈고 서슴없이 먼저 안부를 물어봐줬다"고 했다. 나아가 "특전사나 부사관, 소방공무원 등을 준비한다고 하면 체력 준비 등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를 같이 해줬다"며 "(우리가) 조금 잘못된 길로 빠진다 싶으면 잡아주는 역할도 했다. 흔한 체벌 한번 없이 우리 모두를 이끌어간 분"이라고 전했다. 그는 "정말 친근감 있게 다가와 주고 힘든 일을 도와주려 노력했다. 모두에게 `하면 된다`라는 마인드를 심어주신 분"이라고 했다. 박 소방교의 사고 소식을 접한 이씨는 "코치님의 목소리와 그 친절한 행동과 배려가 아직 너무 생생하다.  뉴스로 먼저 소식을 접했지만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이씨는 "최근 태권도장에 같이 운동하는 언니 결혼식에서 만나 커피도 한잔했었다. 아직 너무 생생하고 믿기지 않는다"며 "사고 당시 화재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너무 속상하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이어 "나는 항상 수훈 코치 같은 멋지고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존경했다. 그동안 살면서 고생 많았는데 좋은 곳으로 가서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른 지인은 그를 "장난기 많고 솔선수범하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울산소방서 소방관 이모(30대)씨는 "나는 소방 97기 훈련 1조 동기다"라며 "박 소방교는 평소에는 장난기가 많았지만 훈련에 임할 때는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떡잎부터 참소방관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목소리도 커서 훈련 때마다 동료들에게 기합을 넣어주며 솔선수범하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고 전했다. 한편 박 소방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과거 그가 ‘허잇챠’라고 외치며 춤을 추다가 발차기하는 동영상이 게재돼 있었다. 2022년 1월 게재된 영상 중 ‘경북소방’이라고 적힌 특수복을 입고 장난기 어린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은 시민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미혼인 그는 평소에도 “나는 소방과 결혼했다”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조직에 큰 애착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여은·조미경·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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