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릉·독도해양연구기지는 ‘울릉태하리임오명각석문’을 6월의 해양유산으로 선정했다.  ‘울릉도태하리임오명각석문’은 울릉도 개척의 계기가 된 1882년 이규원 검찰사 일행의 울릉도 검찰 기간 중 새긴 각석문으로 울릉도 학포마을에 위치해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는 편집을 맡고 있는 ㈜잎스와 협업으로 지난 4월부터 매달 ‘이달의 울릉도(독도) 해양유산’을 선정한다. 해양과학을 바탕으로 한 울릉도(독도) 해양유산 홍보로 울릉도 및 부속섬 독도의 섬 가치와 해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울릉태하리임오명각석문은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12호로 지정됐다. 일본인의 울릉도 밀입 산림 벌채 활동이 잦아지자 조선 조정은 울릉도 방어를 위해 울릉도 현황 조사단으로 이규원 검찰사를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1882년 6월 15일(음력 4월 30일) 학포를 통해 울릉도를 입도했다.  검찰사 일행은 울릉도 사동마을에 울릉도마저도 일본땅이라는 표주 발견, 나리분지 등 울릉도 개척마을 건의했다.  당시 조선은 1417년 이래 울릉도 거주민 쇄출 정책 추진하고 있었다. 이규원 검찰사 일행은 울릉도 검찰기간 중 140여명의 조선인을 만났다. 이 중 약 115명이 배건조 및 미역채취 목적으로 울릉도에 건너온 거문도를 중심으로 한 흥양(현재의 여수,고흥)출신의 전라도 사람들이 이었다.  임진왜란 후 다수의 전라도인들이 울릉도에 계절적으로 건너왔다는 기록(다산 정약용의 탐진어가 등)이 있기도 하다. 이규원은 1833년 강원도 금화군(현 철원군) 출생이다. 1851년(18)에 무과급제, 울릉도 검찰사(종3품) 임명(1881년), 제주목사 겸 찰리사(1891년), 함경북도 관찰사(1900년), 1901년 사망한 인물로, 매천야록에 따르면 이규원은 청렴 결백의 인물 및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푼 관리로 소개되고 있는 인물이다.  학포마을회에서는 2023년 6월 15일, 제1회 학포개척역사문화제를 열고있다. 울릉도 마을회에서는 최초로 6월 15일(이규원 검찰사 울릉도 입도일)을 학포 마을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규원이 울릉도를 다녀간 6월은 기상청 울릉도 주변해역의 연간 풍랑특보 발효일수에 따르면, 연중 풍랑특보 발효일수가 가장 작은 달이다.  그러나, 6월은 또한 잦은 해무로 연중 가시거리가 나빠지는 달이기에, 이규원 검찰사 일행은 아쉽게도 독도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못한 것으로 사료된다. 동해 해저지명에는 이규원 이라는 해저지명이 등재돼 있다.  울릉·독도는 수심 2000m 이상의 심해로 둘러싸여 있다. 울릉·독도 주변에는 다양한 해산들과 해저융기부가 분포하고 있다.  해양수산부에서는 고시(제2007-161호)를 통해 울릉도 서쪽 약 30km에 위치한(북위 37도 33분, 동경 130도 27분) 정상부 수심 892m의 해저융기부를 <이규원해저융기부(Lgyuwon Ridge)>로 명명했다. 정윤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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