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3·15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갈수록 격렬해졌다. 급기야 시위대가 광화문을 넘어 경무대(청와대)를 향해 나아가자 이를 저지하려던 경찰이 발포해 사상자가 다수 발생하는 최악의 사태가 빚어졌다. 당시 집권 자유당의 이기붕 대표최고위원은 사건 경위를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총은 쏘라고 준 것”이라는 황당한 답변으로 전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경찰의 과잉 조치를 합리화하려다 말 같지도 않은 희대의 실언을 내뱉은 것이다. 그 후 이기붕 일가의 가족적 비극과 함께 정권 붕괴로 이어진 결과는 우리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바로 4·19 혁명이다.그로부터 64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 최빈국의 일원에서 단기간에 경제 대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정치판에서 그때와 비슷한 불의와 무법이 자행되고 있다. 4·10 총선에서 압도적 의석을 얻은 야당은 제22대 국회 개원 이후 두 달 동안 온갖 무리수를 남발하며 폭거를 일삼고 있다. 그들이 국회를 일방적으로 운영하며 주장하는 근거는 ‘다수결의 원칙’이다. 회의 진행과 의견 집약의 최후 해결 방법으로 존중되는 수단을 아예 처음부터 멋대로 휘둘러도 되는 요술 방망이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새다.민주 사회에서 요구되는 회의 진행 방식은 대화와 타협이 먼저이고, 전통과 역사가 있는 기구나 조직은 여기에 더해 관행과 전례도 존중하면서 합의와 양보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도 도저히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지지부진할 때에야 비로소 다수결 원칙을 사용해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순리이자 도리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선진 사회로 가는 길이다.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오랫동안 여야가 갈등하면서도 타협해서 만든 암묵적 합의(타협이나 협상은 기록에 의한 문서로 이뤄지는 방식만은 아니다)는 무시하고 처음부터 다수 의석만 앞세운다. 관행을 무시한 일방적인 원(院) 구성부터 상임위원장 독식, 상임위 편파 운영 등에 이루기까지 필설로 이루 다 지적하기 어려운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상식적인 조사·수사 절차를 무시하고 ‘탄핵’이란 비상수단을 악용해 정부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보직자들을 괴롭히고 골탕 먹이는 언행을 되풀이하고 있다.현 정권을 못살게 굴고 대통령을 임기 도중이라도 끌어내림으로써 그들의 당대표를 사법 리스크로부터 보호하고 나아가 정권을 다시 잡아보겠다는 속셈을 웬만한 국민은 다 안다. 탄핵이란 수법은 얼마 전 이미 한 차례 써먹었고 재미를 톡톡히 보기도 했으므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어떤 꼬투리라도 물고 늘어지면 과거의 ‘꿈같은 행운’이 다시 굴러 들어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실험이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그들에게 ‘왜 이런 입법 독재를 자행하느냐?’고 물으면 민주주의의 대원칙 중 하나인 다수결을 들먹이며 오히려 ‘뭐가 잘못이냐?’고 반문할 게 뻔하다. 오직 원칙에 따른 운영이고 정의의 실현 방식이라고 우길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물어보자. 총은 쏘라고 경찰에 준 것이니 경무대를 지키기 위한 발포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대통령을 보위할 따름이라는 논리와,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므로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묵살해도 전혀 문제없다면서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옹위하는 논리가 무엇이 다른가를.아울러 지난 총선의 전체 여야 지지율은 약 45% 대 55%로 큰 차이가 없지만 지역구 단위의 개별 승부이기 때문에 의석수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점도 명심할 일이다. 민심은 단순 다수결로 결정하는 놀이 기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