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이전의 냉전과 현 신냉전 사이에는 다양한 차이점이 있다. 그때는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에 의해 단절된 상태에서 동·서가 대치했지만, 오늘날엔 상대편 주전 선수가 소련에서 중국으로 바뀐 상태에서 경제·기술·문화적 교류와 대결을 병행하고 있다. 미국 패권의 쇠락, 핵거버넌스의 혼란과 핵전쟁 가능성의 가시화, 분쟁 해결사 역할을 해온 유엔 안보리의 무력화, ‘북·중·러 북방삼각’의 군사적 밀착, 북한 핵무력의 고도화 등도 신냉전의 특징이다. 이 모두는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종합하건대, 지금 한국은 6·25 전야 이래 최악의 안보 환경에 노출돼 있다.이런 상황에서 대선에 출마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잊을 만하면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해 한국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우리도 힘든데 왜 다른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리고 돈을 써야 하냐”고 외치는 중산층이 신고립주의를 견인한다. 신고립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을 축소·포기시킴으로써 북방삼각의 오판을 초래해 한국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을 구하기 위해 뉴욕과 워싱턴을 위험에 빠뜨리진 않을 것”이라는 가설이 더욱 힘을 받을 것이다. 북한은 ‘한미동맹·핵우산 해체’를 끌어내기 위해 더욱 험악한 ‘벼랑 끝 핵게임’으로 미국 국민을 겁박하려 들 것이다. 미국 내에서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하자는 목소리도 커질 수 있지만, 신고립주의자들이 외치는 이런 주장은 1950년 ‘애치슨 선언’처럼 ‘한국 포기론’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라 악몽이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 내 신고립주의 발흥을 경계하면서 그것이 한반도 안보에 미칠 충격파를 예방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첫째, 미국의 신고립주의는 정당이나 후보에 따라 상대적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는 보편적 추세다. 한국은 누가 또는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그 대통령과 정부를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 장단기 동맹외교 전략을 예비해야 한다. 특정 후보를 맹신하면서 반대편 후보를 백안시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금물이다. 둘째, 북핵 대응과 관련해서 ‘동맹을 포기해야 하는 핵무장’보다 핵무장을 보류하더라도 강건한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기본을 망각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과제는 미국의 신고립주의가 ‘황당한 상황’이나 ‘치명적 상황’을 촉발하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다. 북핵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고 있음에도 미 핵우산이 보일 듯 말 듯한 존재로 남는다면 한국에는 ‘황당한 상황’이다.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동맹 무력화나 핵우산 소멸을 믿도록 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치명적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 전술핵 재배치 등 신고립주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수준의 확장억제력을 현시해야 한다. 아니면 한국 스스로가 ‘비핵국이지만 위급 시 단시간 내 핵보유가 가능한 나라’로 변신해야 한다.마지막으로, 미국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업적 이익의 극대화만 추구하는 비정함을 무한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70여 년 혈맹국과의 협상에 적용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동시에 한국은 국방비를 GDP 대비 4% 수준으로 올리는 결단을 검토해야 한다. 이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더 많이 부응함으로써 워싱턴의 신고립주의적 대한(大韓) 정책을 불식시키는 처방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및 대만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3개국에 속하는 한국이 스스로 택해야 하는 자강(自彊)의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