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책임지고 16일 사퇴했다. 지난 7·23 전당대회에서 62.8%의 지지를 얻고 선출된 지 146일 만이다. 한 전 대표는 정치에 본격 입문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여당 사령탑 자리를 두 번 내려놓게 됐다. 이제 한 전 대표의 행보가 조기 대선을 향할지 관심이 쏠린다.한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 당대표 직을 내려놓는다"며 "최고위원들 사퇴로 최고위가 붕괴되어 더 이상 당대표로서 정상적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졌다"고 밝혔다.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6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정치를 시작했다.한 전 대표는 정치 경험이 없지만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윤석열 사단의 황태자`로서 원활한 당정관계를 기반으로 총선 승리를 견인할 역할을 부여 받았다.그러나 한 전 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후 줄곧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며 김건희 여사 리스크 해소,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호주 대사 임명 등 핵심 현안을 두고 대통령실 및 친윤계 의원들과 충돌하기 시작했다.특히 지난 1월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을 둘러싼 갈등은 대통령실과 한 전 대표의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 한 전 대표가 김 여사 리스크 해소를 위한 사과 등을 언급하자 대통령실이 `비상대책위원장 사퇴 요구`로 맞받으면서다.이후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서천 회동`에 나서 갈등을 봉합하는 듯했지만, 비례대표 공천 등을 둘러싼 친윤계와 친한계의 갈등은 여전했다.한 전 대표는 4·10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지 두달 여만에 7·23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며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경선 과정에서도 윤 대통령 배신 프레임, 김건희 여사 메시지 무시 의혹, 보수 정체성 논란 등으로 친윤계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전직 대표가 차기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도 여전했다.그럼에도 한 전 대표는 당원과 국민 여론에서 모두 6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두 번째 여당 사령탑 자리에 올랐다.한 전 대표는 전당대회 당선 소감에서 "경선 과정의 모든 일을 잊자"며 당정간 소통과 계파간 화합을 강조했지만 여권 내부 갈등은 계속됐다.한 전 대표 취임 이후 채상병 특검법 문제부터 시작해 의정 갈등 해법, 김건희 여사 리스크 해소 등은 여권 갈등의 뇌관으로 작용했다.지난 9월 한 전 대표가 윤 대통령과 독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사실까지 언론에 알려지는 등 윤·한 갈등은 점점 악화하는 양상이었다.특히 한 전 대표는 10·16 재보궐선거를 전후로 대통령실에 김 여사 리스크 해결을 공개 압박했다. 지난 10월22일 윤 대통령과의 면담에서는 국민 눈높이를 내세워 김 여사 관련 3대 요구사항(`김건희 라인` 등 대통령실 인적 쇄신, 김 여사 공개 활동 중단, 의혹 사항별 설명 및 해소)과 대통령실 특별감찰관 임명을 건의했다.지난 11월 한 달 가까이 이어진 `당원게시판` 논란은 친윤계와 친한계의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한 전 대표 가족 명의로 국민의힘 온라인 당원 게시판에 윤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는 글이 올라왔다는 게 의혹의 핵심인데, 친윤계는 한 전 대표가 가족을 동원해 온라인 여론조작을 했다며 총공세를 폈다. 한 전 대표는 가족 연루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당 대표를 흔들기 위한 시도`라고 맞받았다.이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때는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위헌·위법적 계엄이라고 규정한 뒤 국회 차원의 계엄해제 요구안 통과에 역할을 했다.다만 한 전 대표는 지난 5일 윤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한다고 했다가, 다음날 직무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뒤 윤 대통령을 만나 조기 하야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7일 윤 대통령이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한다`고 하자 8일엔 한덕수 총리를 만나 국정을 공동 운영하겠다는 취지의 담화문을 발표했다.지난 12일엔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며 찬성 당론을 주장했다가 당 의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선 다수 의원들이 한 대표 사퇴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한 전 대표를 향해 `배신자` 등 거친 비난이 쏟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친한계를 포함한 선출직 최고위원 전원 사퇴로 지도부는 붕괴했다.한 전 대표를 향한 시선은 `조기 대선 출마`에 쏠려있다. 한 전 대표가 중요 국면마다 리더십 한계를 노출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지만, 여전히 보수 진영의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힌다.한 전 대표는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권 인사들을 향한 공격력으로 보수층의 지지를 확보한 상태였다.한 전 대표는 이날 사퇴 기자회견 이후 지지자들을 향해 "제가 여러분을 지키겠다"며 "저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조여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