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경북도내 지역 교육지원청들에서 신학기 교실 공기청정기 임대를 위한 입찰이 진행될 때 업체간 담합 의혹이 일었다. 수사결과 담합 의혹이 사실로 밝혀져 현재 10개 업체가 재판에 넘겨졌다. 담합으로 100억원 넘는 예산이 더 들어갔다. 3년이 지난 이번엔 `불공정` 논란이 일면서 경북교육청과 지역 교육지원청의 공기청정기 입찰 관행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교실 공기청정기 임대 입찰, 지난 3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2022년 1~2월 경북교육청 산하 22개 교육지원청에서 공기청정기 입찰이 진행됐다.한 업체에게 다른 업체로부터 담합 제의가 들어왔다. 이 업체는 이를 녹취해 경북교육청에 알려 입찰 중지를 요구했다. 녹취 자료를 제출하려 했으나 경북교육청은 거절했다. 담합 여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할 사항이며 자신들은 조사권이 없다는 것이었다. 공무원들은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 입찰을 중지하면 오히려 우리가 행정소송을 당하게 된다"고 주장했다.결국 담합 의혹을 안은 채 대부분의 시군 교육지원청에서 입찰이 진행됐고 담합 의혹 업체들이 대거 낙찰됐다. 이 업체는 경찰에 이들을 고발했다. 그러나 경찰·검찰 수사는 더뎠다. 2년을 훨씬 넘겨 지난 달 27일에야 담합 의혹으로 10개 업체가 재판에 넘겨졌다.담합 의혹을 받는 업체들이 낙찰된 지역의 공기청정기 월 임대료는 상식 밖 수준이었다. 22개 교육지원청의 평균 낙찰률은 77.5%로 2019년 54.1%보다 크게 높았다. 낙찰률이 95.5%, 90.8%에 이른 교육지원청도 있었고 10개 교육청은 80%대 후반이었다. 이에 따라 각급 학교들은 2019년의 평균 임대료 2만7050원보다 대당 월 1만1700원이 많은 3만8750원의 월 임대료를 내고 지난해 9월까지 사용했다. 100억원이 넘는 예산이 더 들어갔다. 업체들은 각 수십억원의 수익을 챙겼고 또 이번 입찰에 참가하려는 중이다.△특정 형태의 제품만 고집하는 경북교육청과 교육지원청3년이 지나 현재 교육지원청별로 입찰이 다시 진행되고 있다. 올해는 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먼저 특정형태의 제품만 고집한다는 점이다. 공기청정기는 벽걸이형과 스탠드형이 있다. 경북교육청은 지난해 11월 스탠드형만으로 입찰을 추진했다. 3년전에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벽걸이형 업체들의 반발이 따랐고 취재가 시작되자 경북교육청은 `스탠드형 또는 벽걸이형`으로 지침을 수정했다. 수정된 지침은 교육지원청에 거의 와 닿지 않았다. 지금까지 공시한 교육지원청은 모두 `스탠드형`에만 참가 자격을 줬다가 취재가 시작되자 `스탠드 또는 벽걸이`로 바꾸고 있다.△형태별 수요조사를 하지 않는 교육지원청들경북교육청은 지난 해 11월 수요조사를 하도록 한 공문을 교육지원청들에 보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육지원청들은 수요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 학교에서도 벽결이형과 스탠드를 원하는 교실이 따로 있을 수 있으나 이런 정황을 모두 무시하고 스탠드형이 얼마나 필요한가만 조사한 것이다.취재가 시작되자 일부 교육청은 다시 두 가지 형태로 수요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교육지원청은 지금도 스탠드형만으로 수요조사를 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2022년 입찰에서 영천 지역의 경우 87%가 벽걸이형을 선호했다. 이런데도 올해 들어 대부분의 교육지원청들이 스탠드형만 고집하고 있어 의혹이 커지고 있다.△제품 선정기준 배점도 의혹교육지원청들이 의혹을 키우는 또 한 가지는 제품 평가 기준표다. 평가는 제품의 성능을 따지는 정량평가와 제품의 서비스질을 따지는 정성평가로 나뉜다.지금까지는 정량평가 점수 70%, 정성평가 30%로 진행돼 왔는데 올해는 갑자기 이 비율을 30:70으로 바꾼 것이다. 정량평가는 평가항목이 10여개가 넘고 항목마다 점수 차가 많아도 2점이다. 그러나 정량평가는 평가항목이 정성평가의 3분의1도 안되면서도 항목간 점수차가 5~10점으로 엄청나다.게다가 일부 교육지원청이 제시한 정성평가 항목은 `제품 운반, 해체, 설치여부` 등으로만 간단하게 언급돼 있다. 무엇을 평가하는 지 불분명할 뿐 아니라 이들 작업은 업체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어서 더 잘하거나 못하는 것을 따질 필요도 없고 평가 자체도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항목에 배점을 우수 15점, 보통 10점, 미흡 5점으로 해 놓고 있다. 정성평가 대부분의 항목이 이런 식이다.제품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업체 관계자가 평가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탈락으로 이어지는 방식이어서 업체들의 `영업`이 교육지원청 단위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입찰 방식 바꿔 의혹 더 키우는 교육지원청들스탠드형만으로 입찰 자격을 주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일부 교육지원청은 어떤 업체가 입찰에 최초에 참가하는지 알 수 없는 방식의 `일반입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지금까지는 입찰 참여를 원하는 업체들이 자신의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한 후 정성평가와 정량평가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낙찰업체가 결정되는 `2단계 입찰`이 진행돼 왔다. 어떤 업체가 참여하는지 업체들이 모두 알게 됨으로써 서로 견제하고 감시를 할 수 있었다.그런데 일부 교육지원청은 업체들이 입찰단가를 먼저 제시하게 하고 가장 낮은 단가를 낸 업체를 선정하는 일반입찰을 준비하고 있다. 어떤 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했는지는 교육지원청만 알 수 있고 낙찰 후 참여업체들과 이들이 써낸 입찰가격을 공개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낙찰 후 제품에 불만이 있어도 규격에만 맞으면 되므로 입찰주관 기관의 이의 제기가 힘들고 제품이 규격에 맞지 않으면 그 다음 순위의 업체가 낙찰돼 또 제품 설명을 해야하는 번거로움도 있다.일례로 일반입찰에서는 전기효율 등급이 1등급 제품이 있어도 2등급 제품을 가진 업체가 더 낮은 가격을 써내 낙찰이 되면 학교는 2등급 제품을 써야 한다. 이에 비해 2단계 입찰에서는 성능이 더 좋은 제품이 점수를 더 받아 1차 제품 선정에 통과할 가능성이 커진다. 즉 교육지원청 입장에서 임대료를 더 주더라도 성능이 좋은 제품을 쓸 지, 제품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낮은 임대료를 제시한 제품을 쓸 지를 판단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일반입찰은 이런 선택의 폭이 좁아 학교의 불만이 높을 수 있고 제품에 자신 있는 업체들에게는 불리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업체들간의 입찰 전 견제와 감시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2단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투명한 입찰이라는 지적을 받는다.일반입찰로 전환하려는 교육청들이 늘자 업체들 사이에서는 "투명성을 높여야 할 입찰이 반대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지난 번 담합 의혹 업체들 막을 방법이 없다2년 넘게 끌어온 수사는 지난 2022년 입찰 때 담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업체들의 이번 입찰 참가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을 가져왔다.경북교육청은 이들 업체에 대한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아 현재로서는 이들의 참가를 막을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설명한다. 교육청의 판단이 맞다면 이들에 대한 판결은 앞으로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여 올해 이들의 입찰 참가가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다.이들 업체 가운데 일부는 타 시도 교육청에서 입찰을 따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판중에 있는 업체들이 1년 뒤 부정당 업체로 선고가 나면 경북교육청은 다시 피해를 떠안아야 한다.재판 결과만 가지고 입찰 제한을 하려는 경북교육청의 방침에 대해 업계는 "매우 소극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입찰 때 업체는 청렴 서약서를 제출한다. 서약서에는 담합 등 입찰의 자유경쟁을 방해하는 행위나 불공정한 행위 등의 문제에 따른 계약의 해지 등 어떠한 불이익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경북교육청의 이같은 소극적 해석으로 올해 입찰에서도 이 서약서는 요식행위에 불과할 전망이다.담합 고발 업체 관계자는 "내가 제출하려는 녹취에는 명백한 담합 내용이 있다. 이를 근거로 교육청이 입찰 참가를 제한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교육청이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 두려워해 이 녹취를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며 "재판 중에 있는 업체 또는 담합의혹으로 지난번에 납품한 제품이 이번에 또 낙찰되면 보고만 있지 않겠다"고 말했다.이처럼 3년 전의 교실 공기청정기 임대입찰 문제점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오히려 더 불공정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가운데 올해 입찰이 진행되고 있어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