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무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잎사귀도 하나둘씩 떨어진다. 겨울이 되기전 가을 여행 떠나보자. 동해바다를 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보자. 그곳에 가면 가슴이 뻥 뚫린다. 영덕군은 천혜의 자연경관이 빼어나기로 소문난 고장이다. 영덕은 포항의 북쪽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영덕현`편 `형승`조에 “땅은 동쪽의 바닷가에서 끝나고, 산은 고을과 함께 둘리웠다”라고 기록돼 있는 영덕의 고구려 때 이름은 야시홀군(也尸忽郡)이고, 고려 초에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이 고장은 각종 먹거리와 풍물거리, 특히 청정해역의 신비로움을 즐길 수 있어 매년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있다. 영덕에는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구는 특산물 대게와 영덕복숭아, 송이버섯, 영덕멸치, 영덕 꿀배, 부추산채, 오징어, 돌미역, 청어과메기, 영덕단감, 오십천은어,칠포특미 등 각종 먹거리가 산재해 있다. 특히 일제의 항거에 맞선 의병 신돌석 장군이 태어난 고장이기에 이 고장 사람들의 자부심은 사뭇 대단하다. 여기에 영해 향교를 비롯, 괴시리 전통마을, 화수루, 남영의공 유허비, 영해난고종가정침, 무안박씨무의공파종택, 충효당, 대소산 봉수대 등 많은 문화유적지가 있는 충절의 고장이다. 영덕은 특히 대진 해수욕장과 접해있는 명사20리로 우거진 송림과 물이 맑고 사질이 양호해 피서지로로도 각광 받고있다. 피서철에는 스킨스쿠버들이 영덕 해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위해 많은 회원들이 차고있다. 이렇듯 동쪽에 자리잡은 영덕은 적국의 관광명소로 소문 나면서 관광객들이 증가 영덕군 살림에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문화유적지 △신돌석 장군 기념비 태백산 호랑이로 이름난 신돌석 장군은 한말 의병대장으로 영해,영덕, 평해를 거점으로 일제에 항거, 큰 전과를 거두었다. 장군의 뜻을 기리고 구국정신 함양을 위한 후세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55년 장군의 출생지인 축산면 도곡2리(복데미)에 초가11평의생가와 부대시설을 복원. 신 장군은 1896 ~ 1908년 영덕, 청송, 영양, 울진등 여러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운 구한말 독립의병장이다. 그의 생가는 일본 관헌들이 우리민족의 독립의지를 꺽기 위한 정략적 차원에서 1940년에 초가집생가를 불태워 상량주 및 연목 일부가 전소 되었으나 1942년 상량주 및 연목 일부를 새로이 세워 기와집으로 꾸몄다가 1995년 당초 건립시의 초가집으로 복원했다. △비 지정문화재이긴 하지만 영해향교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영해향교는 영덕군 영해면 동쪽 작지산 기슭에 신라 문무왕 3년에 시립했고 영해국학이라 했다. 이때의 사기는 없고 고려조 공영왕 3년 임신에 모든 부군현에 영을 내려문묘를 설치하게 하고 위패를 모시게 했다. 본격적으로는 조선조 태조 4년 을해년에 각 부 군 현에 명하여각 향교에 기본 재산을 모아 많은 학동을 공부하게 하고 많은 인재를 배양하게 하므로 영해 학교에서는 각 문중들이 많은 자금을 내어 향교 운영을 집행하여 훌륭한 인재를 배출했다. 이후 향교직제개편 및 전란등으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위패가 소실되어 영해향교에서는 수년을 두고 향교 중수와 복설관계로 영해 유림이 모여 무수히 노력한 결과 중수를 하게됐다. 특히 영해 향교의 전교가 많은 심혈을 기울여 퇴락한 부분만 수리, 1979년에 복설해 1980년 춘향부터 향사를 봉행하게 됐다. 이 위패와 관련, 향교암이란 암석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괴시리 전통마을 고려말 목은 이색선생이 괴시라 칭했으며 200여년된 고가옥들이 30여동이나 즐비한 전통마을이다. 영해에서 동북쪽으로 약 800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괴시리 전통마을은 동편은 산으로 쌓이고 산의 주봉우리인 망월봉이 뻗어내려 팔자형국의 마을로 마을전면에는 동해안의 3대 평야중 영해 평야가 광활하게 전개돼 있다. 마을 북편에 있는 골은 옛날에 호지가 있었다고해 ‘호지골’이라 부르며 호지촌 또는 호지마을 명칭도 이에따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마을은 고려 공민왕 8년(1360년경) 함창김씨가 입주하여 찬성 김택선생의 외인 목은 이색선생이 여기에서 출생했고 4개 성씨가 같이 거주했으나 3개 성씨는 연차적으로 이주하고 영양남씨만 400여년 거주하는 명문으로 경북도내에 명성이 자자하다. 호지촌을 괴시로 개칭한 것은 목은이색으로 후손들이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목은(이색)선생유허비가 현존하며 이 괴시리 전통마을은 200여년이 된 고가옥들이 30여동이나 즐비한 전통마을이다. 마을 동편 망월봉의 감사무덤은 목은선생 외조모 정경부인 영양남씨의 묘소인데 장례시에 각 고을 수령들이 운집하였다고하여 속칭 감사무덤이라 전한다. ▣특산물 △영덕대게 역덕대게는 다리 마디 생김새가 대나무와 흡사하여 대게라고 하며 지방질이 적어 담백하고 독특한 향미를 지녔다. 생산지로는 경북도 영덕군 강구면에서 축산면사이 앞바다에 잡힌 것이 영덕대게의 원산지대게란 이름은 몸체가 크다고해서 붙여진 것이 아니라 몸통에서 뻗어나간 8개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다하여 붙여진 것이고 영덕대게는 대게중에서도 바다 밑마닥에 개흙이 전혀 없고 깨끗한 모래로만 이루어진 영덕군 강구면과 축산면사이 앞바다에서 3~4월에 잡힌 것이 타지역산보다 살이 차고 맛이 좋아 전국에 명성이 높다. 영덕대게는 일반게인 홍게와는 구별이 되어 색깔은 누런 주황색이고 맛은 약간 단맛이 나며 담백하고 쫄깃쫄깃하며, 체내속살은 꽉차 있으며, 주어획 시기는 11월~익년 5월까지이며 게 껍질은 부드러운게 특징이다. △오십천 은어 오십개의 지류가 합류하여 하천을 이루었다 하여 쉰내(오십천)라고 하며 오염되지 않은 자연경관은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영덕군 관내 오십천 일대에 널리 서식하는 은어는 옛날 태고시대에도 영덕의 오십천에서 서식하여 왔음을 사기(史記)에서 고증하고 있고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나라의 진상물로서 당시의 고관들이 즐겼고 조선시대에는 더욱 귀중히 다루어 조선조말까지 영덕 현령이 되면 영덕은어를 수시로 잡아서 임금님께 진상하였는데 은어를 진상하는 일에 태만하였다 하여 파직된 현령들도 있었으니 진귀한 고기로서 그 귀중함을 알수 있다. 은어는 보통 1년생으로 20-30㎝이며 포획금지기간 은 8월1일-9월30일까지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요 서식지는 오십천 중에서도 하류지역이고 잡는방법은 낚시로 한정되어 있다. 수박냄새가 나는 은어의 요리는 회나 숯불구이, 기름튀김, 매운탕으로 요리해 먹으면 맛이 일품으로 전국 낚시꾼들의 눈길을 끌어 찾아드는 낚시꾼들이 많다. △키토산 칠보특미 영덕에서 생산되는 칠보특미는 병곡면 송천천을 중심으로 칠보산아래 평야지300ha 에서 재배되는 쌀로서 미질이 뛰어나 밥을 지으면 윤기가 흐르고 찰기가 매우 높다. ▣풍물거리 강구대교 아래 위치한 강구풍물거리를 보면 가던 사람의 발길이 저절로 멈춰진다. 강구면 강구리 일대에 도로확장 포장으로 인해 조성된 도로밑 부분에 풍물거리를 조성했다. 이 풍물거리는 길이가 400m정도이고 바라보이는 전면이 확트인 바닷가(오십천과 바닷가 만나는지점)로 바다건너 마주보이는 곳은 강구면 오포리이며 풍물거리 위 도로확장 부분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주차는 용이하다. 이 풍물거리는 총 81개의 부스가 설치되어 1개부스의 크기는 3.5평정도이며, 모든 부스마다 상가가 입주하여 있으며 영덕대게, 마른 오징어, 미역 등의 수산물과 모든 생선회를 취급하고 있고 수산물과 생선회는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하거나 드실수 있다. 풍물거리의 특색은 시내의 야경과 도심 속의 해변으로 정겨움과 낭만을 느낄수 있고 시원한 바다바람을 만끽할 수 있으며 즉석에서 먹는 영덕대게와 생선회는 맛의 진미를 느끼게 한다. 특히 강구항은 어부들이 진한 땀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한때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주말 연속극 촬영장소로 각광 받았고 소설 ‘천둥소리’(김주영)의 주 배경이 되어 한번 가보면 초행길이더라도 친숙한 느낌을 받는 항구이다. 강구항은 물 좋고 싱싱한 생선회를 마음껏 먹고 싶은 식도락가들에겐 더할 나위없이 좋은여행지이다. 매일 새벽마다 전국 각지에서 수십대의 수족관 차들이 몰려들 정도로 활어의 어획량이 많은데다가 80여곳의 간이 횟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근처 풍물거리에서는 갖가지 생선회를 싼 값에 맛볼 수 있으며 전국에서 갈매기가 가장 많은 곳이다. ▣사찰 영덕군 병곡면 금곡3리칠보산(해발810m)기슭에 자리잡은 유금사는 신라선덕여왕때 왕명에 따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며, 여러차례의 중창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이 고장에서는 가장 오래된 고찰로서, 경내에는 3층 석탑과 대웅전,향로전, 산왕각 등의 건물이 있는데 그중 삼층석탑(보물 제674호)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전형적인 3층 석탑으로 각층의 체감율과 기단부의 크기가 안정감을 주는 작품으로 기단면석에는 우주와 탱주가 있고, 갑석 상면에 각형의 2단괴임이 있다. 옥신에는 각각 우주가 새겨지고 옥개석은 4단의 받침을 가졌으며 상륜부는 후에 보충한 것이다. 찾아오는 길울진에서 7번국도를 따라 영덕방면으로 14km정도가면 금곡교를 바로앞두고 두갈래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길로 50cm가서 다시 두갈래 길에서 왼쪽길을 따라 산등성이를 5.6km정도 올라가면 금곡3리의 유금마을이 나온다. 여기에서 200m쯤 더가면 유금사에 다다른다. 대중교통을 이용시에는 영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금곡리로 가는 버스가 30분~1시간 간격으로 있다. 영덕에서 영해로 가는 시외버스 는 20분간격으로 다닌다. ▣유물·유적 선사유적으로 병곡면에 석관묘, 영덕읍 화수리에 세형동검이 출토된 고인돌이 있으며, 창수면에서는 간돌칼·간돌화살촉 등의 석기가 출토됐다. 고대의 성곽으로는 영덕읍의 오보리성터(일명 烏保鎭城址), 달산면의 주응리성터(일명 達老山城址), 축산면의 축산리성터 등이 있다. 봉수로는 영덕읍 창포리의 별반산봉수대(別畔山烽燧臺)와 축산면 도곡리의 영덕대소산봉수대(盈德大所山烽燧臺, 경상북도 기념물 제37호)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병곡면 금곡리의 유금사삼층석탑(有金寺三層石塔, 보물 제674호), 창수면 갈천리의 장륙사대웅전(莊陸寺大雄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영덕장륙사건칠보살좌상(盈德莊陸寺乾漆菩薩坐像, 보물 제993호)과 보림리탑(寶林里塔), 남정면 남호리의 이층석탑 및 석불좌상 등이 있다. 이 밖에 사찰로는 옥천사(玉泉寺)·용천사(龍泉寺)·용운사(龍雲寺)·범흥사(梵興寺)·사자갑사(獅子岬寺)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영덕읍 화개리에 영덕향교, 영해면 성내리에 1529년(중종 24) 이건된 영해향교(寧海鄕校)가 있다. 누대와 정자로는 1693년(숙종 19)에 건립되어 현재도 원형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 창수면 갈천리의 화수루(花樹樓,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2호)와 수리의 덕후루(德厚樓,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34호)가 있다. 창수면 수리에는 조선 중기의 무관이며 임진왜란 때 전공을 올린 박의장 묘소가 있다.  그리고 석비로는 신돌석유허비·박겸호기념비와 이곡·이색부자유허비 등이 있다. 영해면 원구리에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남경생(南慶生)의 관련 유물인 영해난고종가문서(寧海蘭皐宗家文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8호)·영해난고종가정침(寧海蘭皐宗家正寢,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9호)과 난고정(蘭皐亭)이 있다. 고가로는 창수면 인량리에 영덕충효당(盈德忠孝堂, 중요민속자료 제168호)·인량리용암종택(仁良里龍巖宗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1호)·갈암종택(葛菴宗宅, 경상북도 기념물 제84호)·우계정종택(愚溪亭宗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7호), 축산면 도곡리에 무안박씨무의공파종택(務安朴氏武毅公派宗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74호)·영덕도곡동충효당(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3호)·박원대(朴元大)고가·신돌석장군생가지(申乭石將軍生家址, 경상북도 기념물 제87호)와 약 300여년 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박의장생가가 있다. 영해면 괴시리의 영양남씨괴시파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75호)·괴시동태남택(槐市洞台南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7호)·괴시동물소와고택(槐市洞勿小窩古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8호)·괴시동해촌고택(槐市洞海村古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9호)·대은종택(臺隱宗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78호), 창수면 오촌리의 면운재고택(眠雲齋古宅, 경북도 민속자료 제96호) 등이 있다. 존재종택 및 명서암·간헌정(存齋宗宅―冥棲庵·干軒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93호), 병곡면 송천리의 송천세려고택(松川世廬故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6호), 창수면 인량리의 영덕만괴헌(盈德晩槐軒,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9호)·사암재(思庵齋,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6호)·지족당(知足堂,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74호), 영덕읍 구미리의 영덕수정재(盈德水晶齋,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0호)가 있다. 창수면 갈천리에는 167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독특한 건축양식과 기법의 갈천동초가까치구멍집(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호)이 있다. 그리고 영해면 성내리에는 영해별신굿놀이(寧海別神굿놀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호)가 전승되고 있다. 이 밖에 달산면 옥계리의 침수정계곡일원(枕漱亭溪谷一圓, 경상북도 기념물 제45호), 강구면 소월리 입래산(入來山)과 영덕읍 구미리 공북정(拱北亭)에서 피는 거제화(巨濟花)가 유명하다. 이 꽃은 붉은색으로 크기가 매화와 비슷하고 늦은 봄철에 핀다. 조선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한 이곳 출신 신종부(申從溥)가 한성판윤·거제군수 등을 역임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올 때 거제에서 가져온 꽃이라 하여 거제화라고 불렀다 한다. ▣해수욕장 △대진해수욕장은 사질이 양호하고 수심이 얕으며 송천천의 하류지점에 위치하여 담수욕도 즐길 수 있고 뒷편에는 망망대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관어대 산록(상대산)이 있어 동해의 절경이기도 하다. 영해면 해안마을인 대진리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 해수욕장은 맑고 깨끗한 바닷물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으며 백사장 뒤로는 송림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백사장을 가로질러 흐르는 송천천(폭200m)이 바다와 만나는 곳으로 백사장의 모래는 알이 굵고 몸에 묻지 않아 모래찜질에는 그만이다. 해수욕장의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아 어린자녀들과의 가족동반 피서지로는 적격이고 대진해수욕장에 이르기까지의 해안도로에서 보면 금빛백사장과 바위에 부딪힌 하얀 파도는 눈이 부실 지경으로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다. 또한 스킨스쿠버 강습소가 있어 수시로 강습회가 열리고 있으며, 해수욕장옆의 송천천에는 어족이 풍부하여 낚시인들의 발길이 잦고 송천천에 자생하는 조개(재첩) 는 몸에 좋다(간기능 향상)하여 채취인들이 많이 찾아든다. 특히 ‘관광영덕’ ‘그린영덕’을 지향하는 영덕군에서 해수욕장을 직접운영하여 바가지요금이 없고 서비스 만점의 피서지(최고의 서비스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는 해수욕장이다. △고래불 해수욕장은 대진 해수욕장과 접해있는 명사20리로 우거진 송림과 물이 맑고 사질이 양호하며 교통이 편리하다. 고래불해수욕장은 영덕에서 북방으로 24㎞떨어진 병곡면 병곡리를 비롯한해안 6개마을 8㎞의 명사 20리로 송천천을 중심으로 영해면 대진해수욕장과 이웃해 울창한 송림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금빛모래는 굵고 몸에 붙지 않아예로부터 여기에서 찜질을 하면 심장 및 순환기계통 질환에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넓은 모래사장과 울창한 송림의 고래불은 여름철 피서지로는 가장좋은 곳이다. ‘고래불’이란 고려말 대학자 목은 이색 선생이 시를 읊으며 유년시절을 보낼 때 상대산에 올라가니 해수욕장 앞바다(동해)에 고래가 하얀분수를 뿜으며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고래불(‘불은 뻘’의 옛어원)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되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강구에서 고래불까지의 해안도로는 경치가 절경으로 연인과 드라이브 코스로 적격이고 해안도로를 따라 어느곳이던 낚시를 드리우면 우륵, 학공치, 돔 고등어등이 심심찮게 낚여 강태공들이 찾아들고 있다. 그리고 해안절경과 함께 영덕의 특산물인 대게와 청정해역에서 잡힌 신선한 생선회는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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