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재 (경주보훈지청 복지과) 송나라 진종 경덕원년. 요나라 성종은 20만 대군을 발하여 송나라를 침공했다. 중국 북방을 평정한 막강한 요나라의 침공소식에 송나라 조정은 벌통을 쑤신 듯 했고, 좌불안석인 대신들을 이끌어야할 황제 조차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그런 송나라 조정에서 재상 구준은 예외였다. 그는 진종에게 친정을 권했다. 황제가 전선에 나타나면 병사들의 사기가 오를 것이고 이것은 요나라 군대를 궤멸시킬수 있는 필승의 조건이란게 이유였다. 겁쟁이 진종은 핑계를 대며 친정을 주저했으나 강직하기로 이름높은 구준 재상에 등 떠밀려 친정하게 된다. 진종은 전선으로 가는 중에도 몇 번이나 몽진에 대한 의견을 내비쳤으나 구준의 굳건한 의지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그런 사정이 있는 줄 모르는 전선의 송나라 군사들은 황제의 도착소식을 듣고 환호를 올리며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자 했다. 구준의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결국 송나라는 요나라를 막아낸다. 송군 따위는 단번에 전멸시킬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요의 성종은 전쟁을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성립한 ‘단연의 맹’에서 승자인 송나라는 패자인 요나라에 은 10만냥 등 매년 세폐를 바치기로 하였다. 승자가 재물을 바치는 이상한 맹약을 끝으로 양군은 물러났다. 구준의 경우에서 볼수 있듯 일국의 지도자는 국운에 자기 목숨도 걸어야 한다. 모두가 포기를 하는 상황에서도 그만은 포기해선 안되는 것이다. 그것이 일국의 지도자다. 2010년 11월 23일. 우리나라의 연평도는 북한 포격실험지가 되었다. 현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전공을 세워주기 위한 포격이었다. 100여발의 포탄이 연평도를 덮쳐 20여명의 사상자를 낸 공격에 우리군은 연평도 주둔 해병대의 대응사격을 제외하곤 반응이 없었다. 당시 김태영 국방부 장관에 의하면 청와대로부터 ‘단호하지만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영토가 공격당해 국민과 장병이 죽어가는 마당에 확전을 두려워하는 듯한 지시는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북한에 실질적 피해는 주지 못한채 사상자와 재산손실만을 남기고 말았다. 이미 지나간 사건이지만 연평도 포격 도발은 우리군의 교전수칙부터 북한에 대한 인식까지 많은 것에 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길이 잘든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요나라처럼 언제든 침공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이며 웃음 속에 칼을 감추는데 도가 튼 나라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와 정권은 진종처럼 유약한 사람들이 아닌 구준과 같은 단호하고 강력한 추진력을 지닌 인물들이어야 한다. 현 정부가 그런 강력한 의지를 지닌 대통령을 중심으로 적의 어떤 도발도 완벽하게 격퇴하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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