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붙은 가계의 소비심리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 지난 3분기 가구당 월평균소득이 전년 동기보다 늘었지만 소비 지출은 오히려 줄었다고 전해진다. 소득에 대비한 실질소비지출은 5분기 연속 마이너스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바람직하지 못한 ‘불황형 흑자’라고 하겠다. 가계의 닫힌 지갑이 언제쯤 열릴지 전혀 예측도 할 수 없어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극에 달한 정책의 혼선과 정치적 혼란이 경제에 대한 불안 요인을 부채질하고 있는 기막힌 현실을 겪고 있다고 하겠다.
최근 통계청이 내놓은 ‘올해 3분기 가계 동향’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소득 425만 9900원에 평균가계지출은 330만 1200원으로 흑자액이 95만 8700원에 달하고 있다. 이는 통계를 작성한 2003년 이후 최대치로 알려지고 있다. 소득은 전년 동기보다 2.9% 증가했지만, 소비는 그 절반에 못 미친 1.3%만 늘어나는데 그치고 있다. 소비 증가율은 2011년 2분기 이후 9분기째 소득 증가율을 밑돌고 있는 현상이다. 대부분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음식과 주거, 교통 등 꼭 써야 할 곳에만 지출한 셈이다. 가계가 소비할 여력은 충분히 있지만 아예 두툼한 지갑을 닫고 만 것이다.
가계의 소비심리 위축은 경기 침체가 주 요인이겠지만 정책의 혼선에 따른 불안감이 영향을 준 측면도 적지 않고 한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경제 정책에 대한 다른 견해로 시장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고 하겠다. 상반기 때부터 경기 진단을 놓고 기준금리 조정에 이견을 드러내는 등 경기 인식차는 아직껏 줄어들지 않고 있다. 또한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우리 경제가 벼랑 끝에 몰린 버스와 같다”고 우려하더니 며칠 뒤 국감장에선 “경제지표 호조 등을 감안하면 내년 3.9%의 성장률이 가능하다”고 낙관론을 폈다. 경기가 변곡점에 있을 때의 정책 혼선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국회에는 NLL, 국정원 댓글사건 등으로 인한 대치 정국으로 100개가 넘는 경제활성화 법안이 처리되지 못한 채 그대로 쌓여 있다. 투자 활성화 대책, 창조경제 법안, 주택시장 정상화 법안 등 어느 하나 시급하지 않은 게 없다. 국회는 이번 주부터 상임위별로 각종 입법을 심의한다고 한다. 서민생활에 밀접한 법안 처리는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 이들 법안을 내년도 예산안 심의와 연계해서도 안 된다. 가계가 돈은 있는 데도 쓰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정책을 믿지 못한다는 방증이라고 하겠다. 경제정책 당국과 정치권은 가계에 불확실성을 줄이는 강력한 시그널을 시장에 주어야 한다. 그래야 가계는 비로소 그 두툼한 지갑을 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