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에 벌써부터 봄이 왔다.  "국립국악원 내부자로 왔지만, 국악원을 외부자의 시각으로 볼 겁니다. 그것이 국악원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해숙(60)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제18대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이지만, 국립국악원에서는 생기가 감지된다. 신임 원장을 맞이한 긴장감으로 국악원에 온기가 감돈다.  "국악원은 친정 같은 기관이에요. 국악원에서 연구실장도 지냈고, 익숙하지요. 중요한 건 관객의 입장에서 국악원을 지켜보다가 이제는 제가 직접 리드해야 하는 수장으로 왔다는 거예요. 외부자의 시각으로 이야기할 겁니다. `자아비판을 많이 하면서 천천히 가자`는 생각입니다." 김 원장은 서울대 음대 국악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음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과 서울시 문화재 전문위원을 지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임명 소식을 취임 며칠 전에야 들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제 방에서 쓰던 컵도 씻지 않고 나왔다니까요."  국립국악원 63년 사상 최초의 여성 보스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 원장`보다 `연주자 출신 원장`에 방점을 찍는다. 함동정월 명인을 사사하고 최옥삼류 산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가야금 명인이기도 하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가야금 산조 앨범을 발매했다. "공연 예술이 핵심이라고 봐요. 연주활동과 교직 생활을 이어온만큼 예술 현장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국립국악원에 애정이 없었다면 수장으로 올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국악의 전통성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국립국악원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봐요. 하지만 지금은 민간 쪽에 다양한 장르의 외래 음악이 들어와 있잖아요. 그런 게 우리 음악을 재창조하는 소스가 돼야 한다고 보는데, 그런 면에서는 국악원의 템포가 느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국악을 한국사람이 듣지 않으면 누가 듣겠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국악의 대중화는 국악계의 오랜 숙원이자 새 원장의 목표다. "국악인들이 노력했겠지만 국악이 대중에게서 멀어진 것은 일단은 국악인들의 책임으로 봐야죠. 사회에서 왜 여기에다 물을 주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우리 국악인들의 책임입니다. 전통음악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빠르게 변하는 공연 환경이나 문화 등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  국악이 대중의 삶에 가까이 있지 않으니 부담도 크다. 국악 대중화를 꾀하면서도 전통의 가치를 지켜가겠다는 각오다. "우리 음악 콘텐츠를 현대에 맞게 어떻게 조화롭게 탄생시키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문화예술은 자기 혼자 정체된 상태에 있는 게 아니라 시대를 반영해야 합니다." 대중화를 위한 탈예술화, 현대화를 위한 서구화는 지양한다. 국립국악원 만의 공연 레퍼토리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원형적인 건 그대로 가지고 가야 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귀를 무시하면서 갈 수는 없는 거겠죠. 정체성이 담긴 변형이 필요합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것도, 또 말로 되는 것도 아니죠. 얼마만큼의 시간도 필요하고 국민의 애정과 노력도 필요하다고 봐요. 짧은 임기지만 최대한 노력해봐야지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뒤 전국 각지에서 맥락 없이 울렸던 아리랑도 아쉽다. "전통음악에는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부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이를 행사성으로 다루는 걸 보면서 `과연 그렇게 가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것은 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게 진정으로 전통음악을 위하는 길일까요?" 중학생 시절 처음 가야금을 접한 뒤 40여년을 전통음악과 맞닿아 살았다. 전통음악을 말할 때 김 원장의 음성이 커지는 이유다. 종내에는 자신의 이름을 단 산조를 완성하는 것이 소망이다. "아무래도 연습시간이 필요한 거여서 당장은 어렵겠죠. 연습을 안 하면 손이 굳고 그러는데, 조바심 나는 부분입니다. 놓칠 수 없죠."  "제 정체성은 연주에 있다고 봐요. 예전에 잡혀 있던 연주 스케줄을 조금은 줄여야겠지만 국악원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진행해야 할 것 같아요. 원장이 직접 무대에서 연주하면 더 멋있을 것 같지 않나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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