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단순히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정신적 상태가 동반되는 특수한 질병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쑤시는 등 신체에 물리·병리적 징후들이 나타난다. 몸에 생긴 이상은 정신에 영향을 미쳐 두통을 유발한다. 요즘 시대는 말 그대로 몸살에 걸려있다. 인간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자본주의로 인한 사상적 빈곤과 공허, 무한 이기주의는 가난, 환경오염, 전쟁, 폭력, 인신매매, 기아, 정치적 억압 등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켜왔다. 곳곳에 긴장과 불안이 가득하다.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대인들이 자신들의 몸을 하나의 수단이나 도구로 여기는 태도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인턴기획전을 준비했다. ‘몸·살(momsal)’이다. 인턴십 과정 수료 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곽현우·김지희·성정연·이현아·이해미 등 5명의 신진기획자가 기획했다. 한국의 신제헌·이선행·이승훈·흑표범과 중국의 추이쉬엔지(崔憲基), 이스라엘의 시갈릿 란다우의 평면, 설치, 영상, 조각 등이 나왔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몸과 살에 대한 재인식 필요성에서 출발한다. 몸은 살의 육체와 정신이 함께 작용하고 만나는 소통의 장소이자 경계변이다. 정신과 몸이 뒤얽히고 섞이며 가장 진실한 존재의 모습이 드러난다. 육체와 정신, 세계가 만나는 지대로서의 몸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자 물질적 증거다. 전시는 3개 공간으로 나눠 꾸몄다. 1전시실은 역사와 기억, 사회와 개인, 아이콘의 문제를 다루는 신제헌과 추이쉬엔지의 작품으로 채웠다. 신제헌의 작품들은 뻔한 주제를 반복하는 느낌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보는 이에게 홀로코스트,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데이미언 허스트’는 예술의 전복성을 환기하는 듯하다. 작품은 흙이나 금속 소재로 만들어진 듯 무겁고 단단해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종이상자와 껌 포장지 등 대량 생산되는 기성제품들로 만들어졌다. 이미지의 대량 생산이나 확산, 그리고 허상을 의미한다. 추이쉬엔지, 한국명은 최헌기다. 중국 국적이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그는 중국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의문을 작품에 투영한다. 작품에 나타난 숫자들은 의심 없이 배우고 가르쳐 온 규칙과 이념이 과연 정답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역사 속 특정 인물들의 도상과 기호, 한자인 듯하지만 뜻을 알 수 없이 흘러내린 글자들은 스스로 느끼는 정체성과 사상의 혼란이 혼재된 상태를 보여준다. 2전시실에는 이선행과 흑표범의 작품이 설치됐다. 흑표범은 잘 알려진 ‘정오의 목욕’ 퍼포먼스에서 5·18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을 위한 일종의 치유의식을 치른다. 자신의 몸을 과녁으로 만들고 뜨거운 태양 아래 천천히 몸을 닦아내는 과정을 통해 그날의 기억을 불러낸다. 이선행은 이불 속에서도 항상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현대인의 심리 상태를 소재로 삼았다. 작품에 지속해서 등장하는 이불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 아니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조차 편안할 수 없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불안하다. 3전시실에서는 이승훈과 시갈릿 란다우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이승훈은 성형하기 전 재단을 위해 얼굴에 그린 선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몸이 하나의 상품처럼 취급되는 현대사회의 치부를 드러낸다. 수술실에서 찍은 사진과 소리가 중첩되는 영상은 마치 상품을 디자인하듯 몸을 대상화하는 태도에 보내진 작가의 경고다. 조각가이자 비디오 설치작가인 시갈릿 란다우는 몸과 경계, 그리고 장소에 관해 이야기한다. 해변에서 행해지는 란다우의 퍼포먼스는 이스라엘과 주변국, 특히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발생해온 국경 문제, 주도권을 가진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과 전쟁을 ‘몸’이라는 또 다른 장소를 통해 드러낸다. ‘머메이즈’(Mermaids; Erasing the Border of Azkelon·2011)는 가시철조망으로 만들어진 훌라후프를 돌리는 ‘바브드 훌라’(Barbed Hula·2000) 이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텔아비브 해변에서 벌거벗은 세 여성이 모래를 긁는 모습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모래 위 흔적처럼 자연스럽게 아물고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성곡미술관 측은 “작가 6명의 작품은 방식은 다르지만, 인간의 근원인 몸과 살로부터 출발해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정치, 사회, 경제, 예술, 개인의 문제, 즉 몸살의 징후들을 짚어본다는 특징을 교집합으로 한다”며 “몸을 하나의 기호나 대상으로 정의하는 잘못된 사유에 의문을 던지며 우리가 사는 세계를 되돌아볼 소중한 전환점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4월6일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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