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혁명가 `정도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상반기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이 쏟아져나왔고, 사람들은 작품 속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백성`이라고 부르짖는 정도전에 열광했다. KBS 1TV가 지난 1월 선보인 대하드라마 `정도전`은 `정도전 열풍`의 중심에 있다. 지난 9일 최고시청률(16.5%)을 갈아치우며 정통 사극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10일 수원 KBS 드라마 세트에서 만난 `정도전`의 주역들은 유쾌했다. 강병택 PD는 "기획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며 기뻐했다. "이전에 다루지 않은 인물을 다루겠다는 기획이 들어맞았다. 드라마가 보기에 좋고 재밌는 이야기로 흐르며 사극의 본질을 잊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점을 되살리고자 하는 욕심과 포부로 잘 다가간 거 같다." 향리 가문 출신에서 조선 건국의 주역이 되는 정도전을 연기 중인 조재현(49)은 오늘의 현실을 높은 관심의 이유로 꼽았다. "몇백 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 만족도, 행복지수가 낮다는 점이 그렇다. 새로운 정치를 여는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대하고 있는 국민이 `정도전`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말은 시청자에게는 `정도전`의 인기를 방증하는 우스갯소리지만, 연출진과 출연배우들에게는 큰 고민거리다.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연출하고 연기한다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정통사극에서 극본을 쓰는 작가의 역할 비중이 큰 이유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KBS 2TV 드라마 `프레지던트` 등 선 굵은 작품을 집필해온 정현민 작가가 쓰는 `정도전`의 대본은 단단하다. 권력을 쥔 인물의 욕망, 권력을 좇는 자의 야망 등을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녹인다. 정사를 따르면서도 기록된 역사의 사건과 사건 사이를 현실적인 이야기로 훌륭하게 메우고 있다. 함께하는 출연배우 모두 이를 인정했다.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가슴을 울리는 대본을 받았다. 매주 대본을 받을 때마다 기대된다. 노력해서 우리의 울림이 시청자에 닿도록 하겠다"(임호). "매주 대본을 기다리는 심정을 말하자면 사랑이다. 글을 존중한다."(유동근) 정치 9단 `이인임`으로 연기 변신한 박영규(61)는 "정 작가를 만난 건 행운이다. 배우가 이런 작가를 만난다는 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라고 추어올렸다. "`하루 먼저 죽는 것보다 권력 없이 하루를 더 사는 게 두렵다`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배우로서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했다"며 감탄했다. "드라마를 많이 해봤지만 대본 리딩이 기다려지는 건 처음"이라는 조재현은 소설가 박범신과의 일화를 소개하며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을 훌륭하게 메운 작가를 뽐냈다. "정도전이 귀향 생활하는 10년은 사료가 얼마 없어서 빨리 마무리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와중에 박범신 선생이 문자를 보내 `양지를 왜 죽였느냐, 꿈에 몇 번 더 나타나게 해달라`고 말씀했다. `TV를 보는 불특정다수는 이런 장면을 좋아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유동근을 비롯해 `정도전`에 출연 중인 배우가 다수의 정통 사극 경력을 자랑하는만큼 정통 사극에 대한 애착도 드러냈다. "드라마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 다양성이 부족하다. 시청자의 기호만 좇는 드라마였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도전이 기록 중인 시청률의 가치는 높다"(조재현), "드라마 시작하면서 대하드라마를 부활시키자, 시청률을 떠나 의미 있는 작업을 해보자고 이야기했다. 오늘 시청률 성적표를 받아들고 연습실에서 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고마워했다."(유동근) 한편 드라마는 공민왕이 시해되기 직전인 1374년 가을부터 정도전이 죽음을 맞는 1398년까지 24년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유배와 유랑살이를 전전하던 정도전이 혁명을 결심하고 이성계와 의기투합하는 내용 `천명`, 정도전과 이성계가 급진파를 규합해 조선을 건국하는 `역류`,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목전에 두고 이방원에 의해 죽음을 맞는 `순교` 등 크게 3부로 나뉘는 이야기다. 모두 60부작 예정으로 9일 제20회 방송까지 3분의1 지점을 지났다. 강 PD는 "이전까지의 이야기가 사람들이 잘 몰랐던 역사라면 앞으로의 이야기는 `용의 눈물`의 시작점과 비슷하게 시기가 맞아떨어진다. 역사를 알고 있더라도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거다. 역사의 빈 구석을 채워가며 맞춰보면 재밌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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