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다는 대런 아로놉스키(45) 감독의 ‘노아’를 ‘해운대’처럼 물난리 나는 블록버스터 재난영화인줄 알고 간다면 ‘기대난망’이다. 감동적 인간드라마 ‘더 레슬러’(2008)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심리극 ‘블랙 스완’(2010)으로 내털리 포트먼(33)에게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감독의 이름을 뚜렷이 인지하고 가야한다. 11일 시사회에서 벌써 이런 실망이 감지된다. 스펙터클한 광경을 기대했는지, 기나 긴 대사와 설명적 부분들에 지루함을 못 견딘 듯 휴대폰을 열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나가버리는 이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왕자웨이 감독의 ‘동사서독’(1994)을 단순 무협영화인줄 알고 보러갔다가 욕지거리를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일군의 관객들 심정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니 2시간20여분 동안 이어지는 감독의 묵시록적 대서사시를 참고 볼 마음가짐이 없다면 애당초 관람을 않는 것이 낫다. ‘노아’는 무려 1억3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아로놉스키 감독의 첫 대작이기도 하다. 세밀한 심리묘사로 찬사 받던 그가 커다란 스케일의 영화에서도 얼마만큼 실력발휘를 할 수 있을는 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게다가 구약성서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기독교, 유대교뿐 아니라 이슬람교까지 공유하고 있는 대홍수 전설로 대형 스크린으로 옮기는 시도는 주류영화로는 1928년 이후 처음이다. 굉장한 시험대다. 결과는 종교극도 아니고 SF블록버스터도 아닌 괴상한 하이브리드 탄생이다. 천지창조부터 창세기의 내용을 곳곳에 끼워넣어 감각적으로 시각화했으나, 몇 줄 안 되는 ‘유대인 고대역사서’ 성경의 이야기만으로는 불충분했다. 노아의 인간적 모습과 가족구성, 행간 넘어 스토리는 모두 픽션과 상상력으로 메웠는데 이게 딱히 참신하지도 않다. 창세기에는 노아 부부와 세 아들과 세 며느리 등 8명이 살아남는 것으로 기록됐는데 이 영화에서는 둘째아들과 아직 어린 셋째아들의 배우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근친상간의 여지만 남겨놓아 갸우뚱하게 만든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창세기 구절에 충실한 것도 아니면서 이를 벗어나지도 못하니 구성만 산만해졌다. 1950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탄생기의 ‘벤허’, ‘쿼바디스’, ‘십계’ 등에서 보여진 우직한 기독교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열성 기독교인들이 선교영화로 이용하기엔 무리가 있을 듯 보인다. 종교적인 면을 완전히 배제하지도 않으면서 신화적이며 판타지적 요소와 SF적 요소를 가미했다. ‘블랙 스완’으로 주특기가 된 심리극까지 끌어들였다. 상당히 이질적이다. 조합이 어설프다보니 무엇 하나 명료하지 않고 뚜렷한 쾌감을 주는 부분이 없다. 한마디로 노력은 가상하나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아 죽도 밥도 아니게 된 느낌이다. 감독이 영화를 장악한 것이 아니라 영화에 끌려다니고 있다. 담고 싶은 것은 많은데 명확한 구조를 구축하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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