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함부로 할 수 없고, 연극만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했죠. 그래서 춤추고 노래하고 육체적인, `연극적인` 연극을 해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보통 연극보다 서너배는 힘들었죠. 80일 동안 춤 춘다고 배우들의 다리가 부었습니다."한국 전통 연희극을 탐색해온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62) 예술감독이 스페인 20세기 최고의 음유 시인으로 통하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의 `피의 결혼`을 재해석한다. 명동예술극장(극장장 구자흥)과 함께 27일부터 연극 `로르카의 피의 결혼`을 선보인다. 스페인 플라멩코와 우리 장단을 결합, 한바탕 신명 나는 축제 무대로 꾸민다. 극작가뿐 아니라 시인, 연출가, 음악가 등 전방위로 활약하는 로르카는 스페인 연극을 유럽 주류로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전원비극 3부작인 `피의 결혼`(1933), `예르마`(1913),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1934)을 통해 세계적인 극작가로 발돋움했다. 플라멩코를 연구 보급하는 동시에 대학생 극단 `바라카`를 조직, 연극의 보급과 고전극 부활에 힘썼다. 특히 플라멩코를 현대의 공연양식으로 수용한 `피의 결혼`은 언어 중심의 서구 근대극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스페인 민중의 춤과 소리를 결합했다. 문학성과 연극성의 균형을 이뤘다는 평을 받았다. 연극이 말, 몸, 소리, 리듬, 이미지가 종합된 공연 양식임을 보여준 것이다.이 예술감독은 "최근 연극이 말 중심으로, 유명 배우들 중심으로 가는 게 못마땅했다"면서 "연극이란 게 특별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이 말 중심으로 되다보니 드라마, 영화와 차별점이 없어졌죠. 연극이 가지고 있는 카니발리즘, 축제성이 소실된 거예요."힘들었음에도 `피의 결혼`을 만든 이유는 "재미있으니까"다. "유명한 스타를 데려다 대사 연기를 하면 되는데 왜 춤을 추고 소리를 하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재미있으니까 한다는 거예요. 말로 진행되는 문학적 연극이 있지만 본래 연극의 재미는 연희적인 겁니다."요즘은 `말`로만 연극이 진행되니 연출가가 할일도 없다는 게 이 예술감독의 분석이다. "이제 연극적인 연극을 해보자는 겁니다. (하나의 굿판이 연상되는 연극) `오구`를 할 때 국내에서 욕을 많이 먹었어요. 근데 해외에서는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문학적인 연극도 있지만, 본래 연극은 연희적입니다. `오구`를 영화로 만들어서 아는데 영화는 개인적이지만, 연극은 공동체적입니다. 연극을 보다 보면 이웃이 되죠. 함께 어우러지는 체험의 특징이 있어요."너무 대사 위주의 연극이 쏟아지면서 같이 소리치고 즐기는 개인적인 정서가 매몰되는 병폐도 생겼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피의 결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피의 결혼`이 올라가는 명동예술극장도 아주 고급스런 대사 중심의 우아한 중산층 연극을 위주로 하죠. 이런 연극만 해서는 안 됩니다. (연극판이) 망해요. 말만 하고 스토리텔링만 강조하는 연극을 하다보면 연극이 설 땅이 없어져요. 결국 배우들이 영화와 드라마로 가기 위한 하위 장르로 추락할 우려가 있죠. 그래서 특별한 것을 하겠다는 겁니다."`피의 결혼`은 해외에서 영화, 무용극 등을 통해 수없이 무대에 올랐다. 국내에서는 그러나 김정옥 연출로 극단 자유에서 선보인 것 외에 제대로 선보인 바 없다. 2007년 독일에서 플라멩코 춤을 보고, 기타소리와 노래를 듣다가 문득 우리 설장고 장단을 떠올렸다는 이 예술감독은 이번에 가야금, 피리, 그리고 갖가지 타악의 변화무쌍한 한국 전통장단을 얹는다. 격렬한 플라멩코의 고유한 정서인 `두엔데(Duende)`를 아리랑이 지니는 한의 정서와 유사한 것으로 봤다. 특히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으로 숨어들어 박해 받았던 집시들의 피맺힌 한과 삶에 대한 열정에 한반도 끝에 있는 남도소리와 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여겼다.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 선생이 스페인에서 살면서 (격정적인 플라멩코 노래인) `칸테(cante)`와 육자배기 한의 정서가 통한다고 하셨죠."`피의 결혼`은 결혼식 날 다른 남자와 도주한 신부와 그들을 뒤쫓는 신랑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사랑, 그리고 본능이 지배하는 세계를 시적으로 그려낸다. "이 작품의 주제는 일상은 지루하다는 겁니다. 특별한 시간 때문에 우리가 살아간다는 거죠. (다른 사람과) 눈이 맞으면 도망간다, 이게 삶의 진수죠. `피의 결혼`의 스페인어 원제는 `보다스 데 상그레(Bodas de sangre). 독어로는 `호흐자이트(HochZeit·결혼식)로 번역합니다. 이 단어는 `절정의` `한창의`라는 뜻인데 절정의 시간을 위해 나아가는 작품이라는 거죠."`피의 결혼`은 4월5일까지 볼 수 있다. 4월2일 공연 시작 전 명동예술극장 1층 로비에서 정명주 책임PD가 15분 강의를 한다. 앞서 31일 공연 종료 후에는 객석 1층에서 이 예술감독 등과 함께 `예술가와의 대화`를 연다. 1644-2003. 2만~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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