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이후 12년간 무수한 찬사와 수식에 둘러싸여 온 시인이 있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을 지닌 문단의 괴물”(2005년 대산창작기금 수상자 선정 당시)이라는 극찬은 시작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시인 김경주(38)의 이야기다. 2006년 발간된 김경주의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는 시집으로는 이례적으로 1만부 이상 판매되며 인기를 누렸다. 시인은 많은데 시를 읽는 사람은 드문 지금과 다르지 않던 때다. 김경주는 언어적 의미 확장이라는 대과제 아래 시집마다 어떤 시도를 해왔다.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논리를 무너뜨리고 의미의 틈을 비집든, 시와 외부 장르를 통합한 형태의 언어 재창조로 두드러지든, 언어와 삶 사이, 떠남과 돌아옴 사이의 시차를 이야기하든,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표현되지 않는 ‘불가능한 말들’을 시로써 드러내기 위해 분투했다.“찬물에 종아리를 씻는 소리처럼 새 떼가/ 날아오른다// 새 떼의 종아리에 능선이 걸려 있다/ 새 떼의 종아리에 찔레꽃이 피어 있다// 새 떼가 내 몸을 통과할 때까지// 구름은 살냄새를 흘린다/ 그것도 지나가는 새 떼의 일이라고 믿으니// 구름이 내려와 골짜기의 물을 마신다// 나는 떨어진 새 떼를 쓸었다.”(새 떼를 쓸다)김경주의 네 번째 시집 ‘고래와 수증기’가 출간됐다. 2009년 ‘시차의 눈을 달랜다’(민음사) 이후 5년 만의 시집이다.책의 시작을 여는 ‘새 떼를 쓸다’가 ‘고래와 수중기’의 성격을 드러낸다. ‘세 떼’ ‘구름’ ‘물’ ‘살’ 등의 단어는 초기의 산문시에 비해 형식적으로 간결해진 51편의 시에서 변주된다. 곧 떠나거나 변해버릴 불안정한 것들이다. 지난 세 권의 시집이 시인이 몸을 움직여 낯설고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찾아 나서는 여정이었다면 ‘고래와 수증기’는 좀 더 가까이에 있는 일상적인 것들을 오래 바라본 기록이다.기존의 문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적 문법을 써내려가고 있는 김경주의 시는 어렵다. 하지만 서정성을 지닌 일상의 언어가 시인이 조각낸 이미지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이들 이미지가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할 때의 울림은 크다. 물론, 시인이 마련한 행간과 여백 사이를 채우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 “내가 진지하게 쓴 글은 크리스마스카드가 유일하다. 업계가 불안정해서 크리스마스카드 회사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눈치다. 요즘은 아이들이 아닌 노인들만 크리스마스카드를 쓰는 시대니까. 긍지와 고뇌, 외로움으로 세월에 남겠다. 그렇게 믿고 싶다”(시집 뒤표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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