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윤길중(53)의 사진에 흐르는 빛과 바람은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나선 이의 그리운 몸짓처럼 부드럽고 강렬하다. 첫 번째 개인전 ‘노란 들판의 꿈’부터 신작 ‘픽처레스크(Picturesque)-시화(詩畵)’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에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잔잔한 아취가 묻어난다. 윤길중은 나무 작업을 하기 위해 지난 2년간 전국을 돌아다녔다. “우음도 다녀오던 길에 우연히 시화호 근처 늪에서 기이한 형태의 나무 군락지를 발견했다. 처음 몇 번은 늪에 들어갈 생각은 못 하고 뚝 길에서만 망원렌즈로 촬영했는데, 어느 날 용기를 내 장화를 신고 늪으로 들어갔다. 안개 자욱한 벌판 곳곳 상처 입은 나무들을 잊을 수가 없다”고 전한다.신작 ‘픽처레스크-시화’는 그가 앓던 병을 고치는 과정에서 만난 나무가 서 있는 풍경 사진이다. 가지가 부러지고 넘어진 채로 흔들리며 불안하게 제 자리에 뿌리를 내린 나무의 몸짓을 보여준다. 그림처럼 아름답고 시처럼 함축적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간 몇 차례 큰 시련을 겪으며 한때는 ‘죽음의 호수’로 불렸던 ‘그림 같을’ 수 없는 시화호다. 그가 시화호의 나무를 촬영하게 된 것도 관광의 대상으로 가꿔진 자연이 아니라 상처 이후 더욱 건강한 생명력으로 흔들리며 발산하는 숭고한 아름다움 때문이다.윤씨는 “나무들은 뿌리를 내린 땅과 바람이 떠도는 하늘 사이에서 꼼짝없이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간다. 나무들도 경쟁하며 살아가지만, 가까이 붙어있는 나무들은 서로 한쪽을 내주고 반대쪽으로 가지를 키워 나간다. 나무들은 자신의 뿌리가 견딜 수 있을만큼만 몸집을 키운다고 한다. 그래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주변 나무보다 몸집이 작다”고 설명한다.찾아간 곳엔 쓰러진 채 살아가는 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었다. 늪이라 지반이 약해서일 것으로 생각했다. 이 나무들은 뿌리를 드러낸 채 몸통은 옆으로 누여 있지만, 잔가지들은 하늘을 향해 자란다.“처음에는 안타까운 맘으로만 바라봤지만, 쓰러진 나무들은 또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들었다”며 “나도 경쟁에서 밀려 낙오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고 살아왔다. 경쟁에서 비켜나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쓰러진 나무에서 배움을 얻었다”고 고백했다.그의 사진에는 소리가 있다. 바람이 불면 저절로 울리는 바람의 하프처럼, 유독 바람이 높은 새벽의 시화는 맑고 아름다운 음색을 이룬다.“어느 날 내가 즐겨 촬영하던 나무의 가지가 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다”며 이 나무가 또 다른 삶을 살아가겠지만, 봄이 찾아와도 잎을 틔우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겨울을 이겨낸 나무들은 봄에 대부분 싹을 틔우지만, 나무가 쓰러지는 때는 잎이 무성한 여름이다. 촬영 중에 나무가 퍽 쓰러지는 걸 지켜보면서 내 인생을 예비한다. 그 또한 내 삶이다.”전시기획자 최연하씨는 “윤길중은 전업 작가는 아니다. 경제활동과 사진 작업을 함께하며 작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기 결단과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윤중길은 장애를 겪는 삶의 공간과 풍경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해 열린 미의식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고 있다”고 평했다.5월 7~1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갤러리 나우에서 ‘픽처레스크-시화’ 전을 연다. 02-725-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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